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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21)구세군 해주영문(海州營門)




             구세군 해주영문
-구세군의 한국 개전 이듬 해에 세워진 영문-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에 구세군 영문(교회)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방 이전 북한지역에는 장로교회가 월등하게 많았고(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에서 교파를 따로 밝히지 않는 교회들은 장로교회들이다)  그 다음은 감리교회가 많았다.
그와 함께 성결교․구세군․침례교, 자치운동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생긴 군소교파들에 속한 교회들도 있었다.  
장로교와 감리교 외의 교파들은 북한에 있었던 교회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그 교회들에 대해 알아보는데 어려움이 큰 것이 실정이다.


                                 ▣ 황해도 일대의 구세군 영문들을 관장하다▣


구세군 해주 영문은 1909년 4월 15일에 개영(설립)되었다.
구세군은 1908년에 한국에서 개전(선교 시작)을 했다.
구세군 창설자인 부드(W. Booth) 대장에 의해 한국개척선교사로 임명 받은 호가드(R. Hoggard: 許加斗) 정령(正領)이 한국에 도착한 것이 1908년 10월 1일인데 개전 다음 해에 해주 영문이 개영했으니까 해주 영문은 아주 빨리 세워진 영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구세군 창설자 부드 대장은 일본 순회 집회 때 한국유학생 두 명으로부터 선교 요청을 받고  한국에 선교사관을 보냈다고 한다.
그 유학생 두 명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와서 우리를 도우라’ 손짓하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갔는데, 마게도냐 사람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세군 해주 영문은 처음에는 개성 지방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개성 지방에서 사관이 와서 영문을 지도했다.
해주 영문이 점점 부흥하면서 부근에 영문이 여럿 개영되고, 1915년에 해주 지방이 개성 지방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구세군 해주지방은 해주군에 있는 구세군 영문들과 평산군‧ 연백군‧ 사리원읍 등에 있는 구세군 영문들을 관장하였다.
1925년 10월에 23일에 열린 구세군 총회 기록을 보면 ‘해주지방에서 사용할 전도마차를 전달했다.’는 대목이 있다.

구세군 해주지방의 초대지방장관은 웨슬링(F. Westhling; 위설영) 사관이었고 그 뒤를 이어 황종률‧ 쿠퍼‧ 버스톤(A. Beraten; 변세돈)‧ 안트(G. Ardnt; 안도)‧ 올쓴(V. Olsson; 우울선)‧ 게이(H.J. Gay; 기인)‧ 디어스타인(R. Thierstein; 도수돈)‧ 이응목‧ 허천만‧ 권경찬 등 여러 사관이 수고했다.
구세군에서는 신학교를 사관학교라고 부르는데 한국인으로 최초로 해주 해주지방장관이 된 황종률(黃鍾律) 사관은 한국구세군사관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1920년에 해주지방장관에 부임했고 뒤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국 구세군사령관을 역임했다.


                                 ▣첫 영문이 세워진 곳은  청단군이 되다▣


해주영문의  초대 담임사관은 김세근, 그 다음에는 윤태석‧ 장집‧ 차용준‧ 김태의‧ 김치성‧ 허곤‧ 박용근‧ 윤준섭‧ 이선애‧ 김춘택‧ 장기영‧ 황재강‧ 장기영‧ 권영선‧ 오갑경‧ 권영선‧ 안교철‧ 성낙철‧ 이호달‧ 이서흥‧ 유흥열‧ 이영근‧ 이규연‧ 김윤용‧ 이응목‧ 최정현‧ 김원천 등, 여러 사관이 해주 영문을 맡아서 수고했다.
해주에서 구세군 영문이 처음 세워진 곳은 당시 행정구역으로 해주군 동운면(東雲面) 군량골이었다.
그 다음에 동운면 영정리(咏亭里)와 공수리(公須里)에도 영문이 세워졌다.
그 당시 해주군 동운면은 지금은 황해남도 청단군(靑丹郡)에 속해 있다.

그 다음에는 구세군 해주지방이 개성지방에서 분리될 때는 해주읍 북욱정(北旭町)에 해주영문이 있었다.
해주읍 북욱정은 지금은 해주시 사미동(四美洞)이 되었다.
해주 지방영 사무실은 북본정에 있다가 일제 강점기 말기에 북행정으로 이전하였다.
북본정은 지금은 부용동(芙蓉洞)이 되었고, 북행정은 구제동(九濟洞)이 되었다.


                    ▣북한에 영문들을 세우기 위해 힘쓴 구세군▣


구세군은 한국 개전 초기에 북한 지역에 영문들을 개영하기 위해 힘을 많이 썼다.  
초기에 개마고원과 원산으로 가는 길의 김화, 복계, 검불랑, 평강 등에 영문을 개영했다.
몇 해 전에 구세군은, ‘해방 이전 북한지역에 구세군 영문이 90여 개 있었는데 그 가운데 79 곳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국 전체에 구세군 영문이 몇 개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지금 구세군 영문은 국내에 254개가 있다.) 북한지역에 90여 개의 영문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적지 않은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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