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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08) 남산현감리교회(평양)




남산현감리교회(평양): 북한의 심장인 김일성 광장의 뒤, 인민대학습당 자리에 있었던 교회

남산현감리교회는 평양에 있었는데 평양에 있었던 장대현교회는 장댓재교회, 산정현교회는 산정재교회라고도 했다.
그리고 남산현교회는 남산재교회라고도 했다.
장대현,  산정현, 남산현 할 때의 ‘현(峴)’은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재현’자이기 때문이다.
남산현은 해발 35m의 높지 않은 고개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언덕 위에 고개가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일이면 언덕 위의 교회에서 종이 울리고, 흰옷을 깨끗하게 빨아입은 성도들이 성경과 찬송을 옆구리에 끼고 언덕에 있는 교회로 향하고….
실향민 성도들이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 광경이다.


                           인민대학습당 자리는 감리교 선교기지였었다.


우리는 매스컴에서 평양 김일성 광장을 자주 대하게 된다. 북한의 중요한 행사가 김일성광장에서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김일성 광장은 평양의 심장, 나가서는 북한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그 김일성 광장 뒤편에 전통양식의 건물이 서 있는데 그것이 인민대학습당이다.
남산현감리교회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일대는 감리교의 선교기지로 남산현감리교회뿐만이 아니라 기홀(홀 선교사 기념)병원, 선교사주택, 광성학교, 선교사 주택 등이 밀집해 있었고 해방 후에는 성화신학교가 세워져 북한지역의 감리교 지도자들을 양성해 내다가 강제 합병과 폐교를 당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광성학교는 6․25 이후 서울 신수동에 재건되었다.

남산현감리교회는  캐나다 출신으로 미감리회 소속이며 의사이기도 한 홀(William James Hall: 忽, 또는 賀樂이라고도 함) 선교사와 뒷날 감리교에서 최초로 안수를 받은 김창식(金昌植) 목사에 의해 1893년 4월 1일에 설립되었다.
홀 선교사는 평양에서 선교하면서 남산현교회와, 기독병원과 광성학교를 세웠다.
이를 두고. ‘세 사람이 한 가지 일을 하기도 힘이 든데 홀 선교사는 한 사람이 세 가지 일을 했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  
청일전쟁 때(1894~95) 평양에서 격전이 벌어졌는데 홀 선교사는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전력을 다 해 치료했다.
전쟁이 심해지자 더 있기 어려워서 서울로 나왔다가 환자들을 잊을 수 없어서 혼자 다시 평양으로 가서 일하던 중 과로와 말라리아 감염으로 순직, 양화진에 묻혔다.


                         평양에 제일 먼저 세워진 감리교회, 제일 큰 교회, 중심교회


홀 선교사와 함께 일한 김창식은 평양의 관리들에게 미움을 받아 옥고를 여러 번 겪었고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한국 감리교회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김창식은 홀 선교사의 뒤를 이어, 남산현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여러 해 수고했다.
남산현감리교회는 평양에서는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였었고, 제일 큰 교회였었고, 평안도 지역 감리교회의 모교회로서 평양과 그 주변에 여러 교회를 세웠다.  
처음에는 기생이 살던 집을 사서 예배를 드렸는데 기생집에 놀러 다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교회가 세워진 1893년부터 공산당에 의해 폐쇄된 1950년까지 열일곱 분의 목사가 남산현감리교회를  담임했었는데 그 가운데 7대 담임자인 신홍식(申洪植) 목사와 14대 담임자인 김창준(金昌俊) 목사는 3․1 운동 때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김창준 목사는 해방 후에 북한으로 가서 여러 요직을 지내서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이 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갔다.
13대 담임자인 이윤영(李允榮) 목사는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치계에 투신해서 제헌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국회가 개원할 때 이승만 박사의 지명으로 기도를 한 일로 유명하다.


                       방배동의 남산감리교회는 남산현교회의 후신


해방 후에, 남산현감리교회를 담임했었던 이윤영 목사가 독립운동가이며 감리교 목회자인 이규갑(李奎甲) 목사와 함께 회현동 남산 밑에 있던 욱정교회라는 일본인교회를 인수해서 월남한 남산현감리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남산감리교회를 세웠다.
남산교회는 남산터널 공사 때문에 1980년에 방배4동으로 옮겼다.

평양을 방문하면 안내하는 북측 요원들(참사)이 빼놓지 않고 인민대학습당을 가리키면서 “저기가 평양에서 제일 좋은 자리이어서 정부 관리들이 거기에 정부 청사를 짓자고 하니까 수령님이 ‘그렇게 좋은 자리이면 거기에서 인민들이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해서 저기에 인민대학습당을 지었습니다.”고 한다.
남산현감리교회는 그렇게 좋은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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