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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18)진남포중앙감리교회(현 남포특별시 소재)




        진남포중앙감리교회
        -옛 이름은 비석리(碑石里)감리교회-


진남포중앙감리교회는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진남포교회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동네 이름을 따서 비석리교회(碑石里敎會)라는 이름을 오래 쓰다가 1939년 경에 이름을 중앙교회라고 바꾸었다.
중앙교회는 감리교 서부연회 진남포지방에 속해 있었는데 1939년에 열린 제7회 서부연회에서, 진남포 지방 감리사는 “중앙교회는 본시 비석리교회를 명칭을 변경하여 중앙교회라고 고친 후에 과연 명실 공히 괄목상대하리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나날이 진흥되어 가오며”라고 보고했다. 같은 지역에 비석리장로교회가 있었는데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부흥, 그리고 3․1만세운동의 주역▣


진남포중앙감리교회는 1897년에 세워졌다.
미감리회의 노블(W. A. Novel: 魯普乙) 선교사와 김창식(金昌植) 전도사의 전도로 교회가 세워졌는데 김창식 전도사는 뒤에 감리교에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다.

처음에는 한 신자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다섯 칸 초가집을 구입했다.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해서, 1913년에는 40칸짜리 예배당을 신축했다.
‘1938년 감리교 재산목록’을 보면 중앙감리교회의 예배당은 47.8평의 목조함석지붕건물이었고, 목사주택, 전도부인주택, 사정실(使丁室), 유치원, 엡웟회관이 있었다.
‘사정’은 관청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을 부르는 말인데  교회에서는 예전에는 지금의 사찰집사를 사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엡웟회관은 청년회관을 말한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태어난 곳이 영국의 앱웟인데 감리교에서는 청년회를 오랫동안 ‘엡웟 청년회’라고 불렀다.

중앙감리교회에서는 삼숭(三崇)남학교와 여학교를 세워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1919년에 3․1 민세운동이 일어날 때 삼숭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했고, 앞장서서 이끌었다. 독립선언서도 삼숭학교의 등사시설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중앙교회는 억양기(億兩機)라는 곳에 제2교회, 관동(冠洞)이라는 곳에 제3교회, 그리고 그밖의 여러 곳에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 설립했다.

진남포중앙감리교회는 황정모(黃鼎模) 전도사, 1930년대 초반에는 오인근(吳仁根) 목사, 그 다음에는 이경선(李慶善) 목사, 1930년대 중반에는 송정근(宋貞根) 목사, 1930년대 후반에는 안석준(安錫濬) 목사가 담임했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부목사들이 있었는데 김영순(金靈淳) 목사, 이창주(李昌周) 목사가 부목사로 수고했다.
그 때는 교회에 부목사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는 현병찬(玄炳讚) 목사가 담임했는데 현 목사는 진남포지방의 감리사였다.


                           ▣성찬식을 하지 못한 지방회(1949년)▣


6․25를 한 해 앞둔 1949년 6월1일, 감리교 진남포지방 제4회 지방회가 바로 중앙교회에서 열렸는데 현병찬 목사는 “지방회를 모이면 반드시 성찬식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성찬식을 하지 못해 유감이나 마음 속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힘이 되고 생명이 되기 바란다.”고 인사했다.
공산정권의 핍박 때문인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방회에서는 다음 해의 지방회를 억양기교회(億兩機敎會)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그 다음 해의 지방회는 모이지 못했다. 6․25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진남포중앙감리교회의 예전 주소는 평안남도 진남포부 비석리 226번지였다.
진남포의 원래 이름은 남포였는데 일본당국에 의해 진남포가 되었다가 해방 후 원래의 이름을 찾았고, 직할시(도급)가 되었다가 특급시로 격하되었다가 2011년에 특별시가 되어 주변 여러 지역을 흡수했다.
비석리는 상비석동․중비석동․하비석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진남포중앙감리교회는 지금의 남포항 동쪽 지역, 남포역 건너편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부 인사들이 남포로 안내를 받는 일이 많은데 이는 남포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서해갑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봉수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손효순 목사가 “나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진남포중앙교회에 출석했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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