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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20)해주성결교회




       해주성결교회
  - 여러 교파가 있었던 지역에 세워진 교회-


‘남쪽에 큰 바다가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해주는 황해도의 도청소재지였었는데, ‘황해도’라는 이름은 황주(黃州)에서 ‘황’을 따고, 해주(海州)에서 ‘해’를 따서 만든 것이다.
북한은 1954년 10월에 황해도를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나누었는데 이 때 해주는 황해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장로교 선교기지 건립 후보지였다가 감리교 선교구역이 되다▣


해주는 천주교가 강했던 곳이다.
해주는 천주교 선교사들이 밀입국하는 통로 가운데 하나였었다.
해주의 천주교인들은 초기에는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한국과 프랑스가 수호조약을 맺어 천주교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 다음에는 세력이 강해진 이곳의 천주교인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 북장로교가 해주 선교에 힘썼는데, 미 북장로교가 황해도 선교를 담당할 선교부(mission station)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을 의논할 때 해주와 안악(安岳)이 후보지가 되었다가 재령(載寧)으로 결정되었고, 1909년, 해주는 미감리회의 선교구역으로 결정되어 장로교는 해주의 교인을 모두 감리교에 인계하고 철수했다.

감리교의 해주에서 왕성하게 선교활동을 해서 1938년에 해주 지방에는 45개의 감리교회가 있었고, 감리교에서 세운 학교와 병원들이 여럿 있었다.
선교지역 분할협정은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 맺어진 것이어서 다른 교파들은 이 협정의 제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해주는 감리교 선교구역이면서도 성결교․ 구세군․성공회, 그리‘예수교회’라는 교파에 속한 교회도 있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선교지역 분할 협정이 이전과 같이 강하게 지켜지지 않아서 장로교에서는 해주에 1936년에 해주에 해주제일교회를 세웠다.

해주 성결교회는 1932년 6월 5일에 세워졌다.
동양선교회 조선예수교성결교회에서 박문익(朴文翼) 전도사를 해주에 파송해서 해주성결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박문익 전도사는 황주에서 목회하다가 해주성결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 분은 그 뒤에 서울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다음에 신안주성결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중국대륙 동북지역으로 건너가서 이 지역의 성결교회들을 부흥시키는데 많은 힘을 썼다.
그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의 도문(圖們)에 있는 도문성결교회도 담임했었다.
박문익 목사는 해방 후 원산에서 세상을 떠난 것을 전해지고 있다.


                            ▣기도로 세운 성전▣


김홍순(金鴻淳)이라는 분이 청년 시절에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스물네 살 때 회개를 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 첫 목회지로 해주성결교회에 부임하여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전을 준공했다.
성결교 기관지인 「활천」(活泉)에는 해주성결교회 건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침은 물론 점심에도 기도했던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많이 나온다.
김홍순 목사는 해주성결교회를 떠난 다음에는, 중국대륙 동북지역 안동(安東: 현 단동)에 이어 봉천(현 심양)의 봉천중앙성결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해방 후에 국내로 돌아와서 평양 대동성결교회에서 시무했는데 반동분자로 몰려  저 악명 높은 아오지 탄광에서 2년간 고생을 했다.

1936년에는 김기삼(金琪三) 목사가 해주 성결교회에 부임했는데 이 분은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고, 3․1 운동 때에는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옥고를 겼었다.
해주성결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일본으로 가서 오사카성결교회를 담임했는데 이 때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재림을 강조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1941년에는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가 남달랐던 분’이라는 말을 듣는 최학철(崔鶴喆) 전도사가 부임했는데 이 분은 1950년대에, 이성봉 목사님의 뒤를 이어 신촌성결교회를 담임했다.

해주성결교회는 1939년에 왕신리에 기도처를 신설했다.

재림사상이 강했던 성결교회는 일제 말기에 교단이 강제로 해산을 당했는데 해주성결교회도 이 때 폐쇄되었다가 해방 후 재건되었는데, 1947년의 기록을 보면 교인이 15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해주성결교회는 해주 남욱정(南旭町) 350번지에 있었는데 남욱정은 해운동(海雲洞)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닷가에 구름이 많이 끼는 곳이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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