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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15) 재령동부교회




     재령동부교회
 -‘황해노회 제1의 교회’-


재령동부교회는 재령에 있었는데 재령은 황해남도(북한은 1954년에 황해도를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나누었다)에 속해 있고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재령쌀을 북률미(北栗米)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전에 재령군 안에 있었던 북률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재령은 농경지가 많은 곳이며 곡물과 과일을 많이 생산하는데 과일 가운데 특히 재령복숭아가 유명하다.
재령군에는 재령강이 흐르고 있고, 이 강을 막은 은파호(銀波湖)라는 호수가 있다.


                                            ▣“재령은 기독교 천하”▣


재령은 기독교가 강했던 곳으로 유명했다.
「개벽」이라는 잡지의 1925년 6월호에는  “재령이야말로 기독교천하이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재령이 이렇게 기독교가 강한 곳이 된 것은 이곳에 미 북장로교의 선교기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재령동부교회는 1895년에 설립되었다.
김백영(金伯榮)이라는 분이 전도해서 80여 명이 믿어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평양여학교의 교사인 여신도 한 분이 8칸 기와집을 교회에 바쳐서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재령동부교회는 초기에는 재령읍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을 따서  남산현(南山峴)교회라고 했고 재령읍교회가 되었다가 계속 부흥하여 1922년에 재령서부교회와 재령동부교회로 분립하였다.

재령동부교회는 선교사들이 여러 분 담임했었다.
초기에는 헌트(W.B. Hunt: 韓緯廉)선교사가 담임했었는데 이 분을 흔히 ‘재령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헌트 선교사는 1898년에 재령에 갔는데 이 때 재령의 교인들은 천주교인들의 방해로 제대로 모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헌트 선교사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서 재령동부교회를 잘 이끌어 갔다.
헌트 선교사는 1939년에 은퇴해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아들 한부선(韓富善)이 대를 이어 한국 선교사로 수고했다.

그 다음에는 샤프(C.F. Sharrp:史佑業) 선교사, 그 다음에는  쿤스(E.W. Koons:君芮彬) 선교사가 담임했다.
김구(金九) 선생이 최준례(崔遵禮)여사와 결혼을 할 때 결혼증서를 만들어 준 분이 쿤스 선교사인데  쿤스 선교사는 나중에는 경신학교 교장을 지냈다.
이 분은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것 때문에 일본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많이 받았다.
그 다음에는 커(W.C. Kerr:孔韋亮) 선교사가 담임했는데 당시 미국 선교사들 가운데는 아주 드물게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목사이며 의사인 화이팅(H.C. Whiting:黃浩里) 선교사가 담임해서. 1906년부터 3년 동안 6천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그의 부인은 재령에서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계몽, 생활개선 운동을  하면서 많은 성과를 올렸는데 재령에서 49세 때 세상을 떠났다.


                                   ▣박태로 담임목사, 첫 중국 선교사로▣


한국인 교역자로는 먼저 1911년에서 1913년까지 재령동부교회를 섬긴 박태로(朴泰魯) 목사를을 들어야 하겠는데  장로교가 1912년에 총회를 조직하면서 중국선교를 결의하면서 제일 먼저 박태로 목사를 중국선교사로 선발했다.
재령동부교회 교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박태로 목사는  1913년에 재령동부교회를 떠나 중국 산동성에 가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중국에서 병을 얻어 돌아오셔서 세상을 떠나셨다.
이 분의 후손 가운데 순교자도 있고, 신학대학 총장을 지낸 분도 있다.

그 다음에는 김용승(金龍承) 목사가 1914년부터 30년 가까이 재령동부교회를 섬겼다.
마지막 담임목사님은 서동원(徐東元) 목사인데 이 분은 장로교 최초의 일곱 목사 가운데 한 분인 서경조(徐景祚) 목사님의 아드님이다.
서동원 목사는 재령동부교회에서 세운 명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940년에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재령동부교회를 담임했는데 일본 강점기에는 민족주의 사상 때문에 일본 경찰의 감시와 방해를 받았고, 해방 후에는 공산정권에 반대해서 역시 감시와 핍박을 받았다.
서동원 목사는 월남을 하려다가 실패하고 6․25 전쟁 직전에 재령에서 병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재령동부교회의 정찬유(鄭纘裕) 장로는 재령의 갑부였는데 “교회를 짓기 전에는 결코 내 집을 갖지 않겠다.”고 서원하고 교역자 한 분을 일본에 가시도록 해서 교회건축에 대해서 공부해 오도록 한 후,  1906년에 재령 동부 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재령동부교회 예배당은 십자형이었으며, 아름다운 2층 건물이었다.
정찬유 장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섬김과 나눔에 모범을 보였는데 자기 자신은 아주 검소한 생활을 했다.
정찬유 장로의 아드님이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鄭寅旭) 회장인데 이 분도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내면서도 구두와 양복을 10년 넘게 기워서 사용할 정도로 검소와 청빈을 실천하면서 청교도적 생활을 했다고 하다가 10여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정인욱복지재단이 조직되어서 지금 장애인과 자립과 자활을 위한 지원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재령동부교회는 ‘황해노회 제1의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재령동부교회의 주소는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수창리(壽昌里)였는데 이곳은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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