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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13)조강(祖江)감리교회




 -애기봉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던 교회-



조강감리교회는 경기도 개풍군 임한면 하조강리 660번지 1호에 있었다.
원래는 38선 남쪽에 있는 곳이어서 6․25 전쟁 전까지는 남한 땅이었는데 6․25  전쟁 때 북한 땅이 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개풍군 조강리인데 현재의 조강리는 예전의 개풍군 임한면 상조강리․하조강리․유천리가 합한 곳이다.
북한의 조강리는 한 때는 판문군에 속해 있었는데 판문군은 2002년에 없어졌다.
북한의 현행 행정구역에는 면(面)이 없다. 그리고 리(里)는 예전의 리들 서넛을 합해 하나로 만들었다.
남한의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도 조강리가 있어서 지금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한의 조강리와 북한의 조강리가 마주보고 있다.  

이 일대는 한강 하류로서 원래는 조강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라고 해서 ‘潮江’이라고 하다가 ‘祖江’이 되었다.
감리교의 문서에는 ‘照江’이라고도 나오는데 이는 잘못인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이전에는 강을 포함해서 강의 북쪽에 있는 마을과 남쪽에 있는 마을을 모두 조강리라고 불렀는데 전쟁이 이렇게 마을을 갈라놓았다.

           ▣풍덕(豊德)구역에 속해 있었던 교회▣

조강감리교회가 언제 설립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교회와 관련된 여러 기록에 이 교회의 이름은 1930년대에 등장한다.
조강감리교회는 여덟 칸 크기의 목조 초가 건물이었다. 예전에는 교회당의 크기를 말할 때 ‘칸’을 많이 사용했는데 한 칸은 대개 1.7평이었다.  
1938년 당시 교회당의 싯가가 100원이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화폐가치로 얼마나 되는지 환산할 수는 없으나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나마 타인소유로 되어 있던 것을 보면 세를 들어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목사 한 분이 여러 교회를 담임했었는데 감리교회에서는 한 목사가 담임하는 여러 교회를 ‘구역(circuit)’이라고 했다.
구역을 정확하게 말하면 ‘목회적인 감독을 위하여 함께 결합되어 있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지역교회 또는 기도처들’이 된다.
한 구역 안에는 보통 5, 6개, 많은 경우에는 10개 안팎의 교회가 속해 있었다.
조강교회는 풍덕(豊德)구역에 속해 있었는데 풍덕구역에는 1935년에는 14개의 교회가, 1938년에는 옥산(玉山)교회․산귀리(山歸里)교회․망포(望浦)교회․조강(潮江)교회․선미(仙美)교회, 이렇게 5개의 교회가 속해 있었다.
목사 한 분이 그 여러 교회들을 돌보느라고 수고가 많았을 것이다.

풍덕구역은 신흥철(申興哲) 목사(1932년), 이관운(李觀運) 목사(1934년), 윤자학(尹慈學) 목사(1935년), 강조원(姜助遠) 목사(1937년: 강조원 목사에 대해서는 지난번 개성남부감리교회 편에 자세하게 소개됨),이 이어가며 부임하셨다.
감리교의 교역자 인사관리제도는 원래 파송제로서 연회에서  목사님들의 임지를 정해 파송했는데 대개 2년 단위로 파송을 했기 때문에 한 분이 한 교회에 오래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 제도로는 교회 부흥을 이루기 어렵다는 의견이 일어나 1970년대부터는  ‘파송’이라는 말은 쓰지만 실제로는 초빙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들 온 겨레의 상심과 같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조강리는 김포에 있는 애기봉(愛妓峰)에서 잘 보이는 곳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전통명절이 되면 실향민들이 많이 애기봉을 찾아 북녘을 바라보며 고향 그리운 마음을 달랜다.

애기봉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평안감사가 임금의 곁으로 가기 위해 애기와 함께 달려오다가 이 부근에서 평안감사는 호병(胡兵)들에게 잡혀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는 여기에서 북을 바라보며 울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154고지였는데 이 사연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름을 애기봉이라고 바꾸도록 하고 친필 휘호(사진의 비석 글씨)를 내렸다고 한다.
비석 받침에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조강(祖江)이 남북을 꿰뚫어 민족이 한을 안고 띠 같이 흐른다
   여기 한강을 가로질러 선없는 금을 그어 놓았다 누구의 짓이냐
   피는 강물보다 진하다. 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애기봉을 보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일편단심 북녘 하늘을 바라보다 통곡하다 죽었네
   오늘날 우리들 온 겨레의 상심과 같다
   아아, 대한민국 해병대, 의기풍천 멸공통일의 깃발을 든다.

라는 시가 동판에 붙어 있다.


전에는 성탄절이 되면 애기봉에서는 성탄 트리를 설치했다.
몇 해 전에 남북이 비무장지대 일대의 선전물을 모두 철거하기로 해서 여러 해 성탄트리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2010년에 7년만에 다시 성탄 트리를 설치하고 점등예배를 드렸다.
북한은 이 일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1년에도 트리를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김정일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죽자, 북한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그 계획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조강감리교회는 남에서 멀지 않은 곳, 잘 보이는 곳이면서도 갈 수 없는 곳에 있었던 교회이어서 더 안타까운 느낌을 주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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