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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14)정주읍(定州邑)교회(평북 정주군 소재)



                정주읍(定洲邑)교회
    -‘민족교회'의 성격이 강했던 교회-


정주읍교회가 있었던 정주는 민족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한 오산학교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오산학교는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 있었다.
‘오산(五山)’이라는 이름은 그곳에  제석산․황성산․자성산․남산봉․소형산, 다섯 개의 산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북에서는 오산학교에 대해서 “반일애국교육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평양대성학교, 안악양산학교와 함께  애국적지식인들의 활동거점이었다.”라고, 좋게 평가하고 있다.
오산학교는 분단 후, 서울 보광동에 재건되었다.

정주는 오산학교와 함께 정주왕밤, 그리고 품질이 좋은 누에로 유명한데 정주군은 1994년에 시로 승격했고 오산학교가 있었던 익성동은 ‘오산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주는 산천이 수려하고 기후가 알맞아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교회당이 불타다▣


정주는 기독교가 강성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정주의 기독교는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지도자들에 의해서 퍼져 나간 것이 특징으로서 ‘민족교회’의 성격이 강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938년 장로교 주소록」에는 정주군 안에 모두 29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가 바로 1899년에 설립된 정주읍교회이다.
정주읍교회는 철산 출신  유상도(劉尙道)라는 분이 정주에 와서 전도해서 설립되었는데 처음에는 김시항(金時恒)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17년에 다시 예배당을 신축했는데 이 예배당은 2년 뒤, 3․1 운동 때 일본 경찰에 의해 전소(全燒)되었다.

3․1 운동 때 하나의 공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강한 곳에 만세운동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정주는 오산학교가 있고, 3․1 운동의 한 축(軸)을 이루었던 천도교도 강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김병조(金秉祚) 목사와 이승훈(李昇薰)장로의 고향이 정주이고 이명룡(李明龍)장로는 철산에서 태어나셨지만 정주에서 성장해서 정주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정주는 만세운동의 규모가 아주 클 수밖에 없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사이에 정주군 안에서 18회의 만세 시위가 있었고 참가인원이 5만 5천 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일본 당국의 진압과 보복도 극에 달해서 사망자 120명, 부상자 525명이 발생했고 567명이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4월 1일 아침 6시경에 정주읍 교회에 방화하여 모두 불태웠고, 그 다음날 새벽에 오산학교와 기숙사에 불을 질렀고 이승훈 장로와 이명룡 장로의 가옥을 파괴했다.
교회당을 잃은 정주읍교회 교인들은 세 칸짜리 임시예배당을 지어 예배를 드리다가 1921년에  힘을 모아 42간의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정주의 신앙 지도자들▣


초기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4회 졸업생(1911년)인 차형준(車亨駿)이   강도사의 직분으로 정주읍교회를 섬겼고,  1918년부터는 평양장로회신학교 2회 졸업생(1909년)인 정기정(鄭基定) 목사가 담임했다.
정기정 목사는 한학을 깊이 공부한 분인데 번개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기독교인이 된 분으로서 평안북도에 26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이승훈 장로에게 세례를 준 분이 바로 정기정 목사이다.
해방직전까지 중국 심양의 서탑교회(西塔敎會)를 담임하여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면서 중국동북지역의 동포교회들을 지도하던 정상인(鄭尙仁) 목사(순교자)가  정기정 목사의 아드님이다.

1920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8회 졸업생(1915년)인 김진화(金鎭華) 목사가 부임하셨고1940년에는 조시한(趙時漢) 목사님가 담임했다.

정주 출신인 김병조(金秉祚) 목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10회 졸업생(1917년)인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일 때 도장을 이명룡 장로에게 맡기고 자신은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만세운동을 지도했고  그 뒤에 상해로 망명해서 민족대표 가운데 체포를 면한 유일한 분이 되었다.
김병조 목사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요인을 지내면서 국제연맹에 보낼 조선독립청원안 작성위원, 임시정부사료편찬위원,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상해교회 목사로도 일했고 교육사업도 하였다.
그 뒤에는 중국대륙 동북지역에서  목회와 민족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정주에서 반공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옥사하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주읍교회의 주소는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 성내동 75번지였는데 이곳은 지금은 성남동이 되어 있다.
정주역 서쪽 지역인데 정주역은 지금 청주청년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한은 ‘청년절’이라는 절기를 제정하면서 역이나 철로, 중요시설의 이름에 ‘청년’이라는 말을 넣었는데 정주역의 경우는 오산학교와 맞물려 ‘정주청년역’이라는 이름이 퍽 의미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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