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05)원산(元山)중앙감리교회



                     
                                       원산중앙감리교회  
                            -민족대표와 순교자들이 담임했었던 교회-


군사분계선이 강원도 가운데를 지나기 때문에 남에도 강원도가 있고, 북에도 강원도가 있는데, 북은 1946년 9월에 함경남도의 원산과 문천(文川)과 안변(安邊)을 강원도에 편입하고 원산을 강원도의 도소재지로 삼았다.(그 이전까지는 북의 철원군이 강원도의 도소재지였다.)

            
                           ▣ 관북제일의 기독교도시-평양대부흥의 산실이 되다 ▣

원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항한 이름난 항구 도시로서, 예전에는 부산포(釜山浦), 제물포(濟物浦),  원산진(元山鎭)을 ‘개항3항’이라고 불렀다.
그런 이유로 원산에는 외국의 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왔고 기독교도 일찍 들어오게 되었다. 원산에 제일 먼저 들어 온 선교사는 한국문화를 깊이 사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게일(J.S. Gale; 奇一) 목사였다.
감리교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와 선교부를 설치했다.
예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각각 선교지역을 나누어서 선교했는데  원산은 캐나다장로회와 남감리회가 공동으로 선교하기로 1907년에 협정을 맺어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있게 되었다.
서울과 평양도 원산과 같이 공동선교구역이 되었다.

한국침례교의 기틀을 놓은 펜윅(M. C. Fenwick; 片爲益) 선교사도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원산은 이와 같이 교회의 활동이 아주 왕성해서 ‘관북제일의 기독교 도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03년에는 원산에서 캐나다에서 온 의료선교사 하디(R. A. Hardie: 河鯉泳)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원산대부흥이 일어났고 이 운동이 평양대부흥의 불씨가 되었다.

                            ▣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 ▣


원산부흥운동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원산중앙감리교회는 1901년 3월에 하디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처음에는 상리감리교회라고 하였고, 한 때는 남촌동(南村洞)교회라고 하였는데 1931년에 원산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산중앙감리교회는 1906년에 남촌동에 80평 규모의 목조함석지붕 예배당을 지었고, 1937년 6월에는 건평 303평의 3층 벽돌 예배당을 지었다.
당시 교인은 644명이었다.

1907년에는 주한명(朱漢明)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는데 이 때 교회가 크게 부흥했고, 이어 오화영 목사, 1919년에는 정춘수(鄭春洙) 목사,  한인수 목사,  유시국 목사,  신석구 목사, 노병덕 목사, 1927년에 이호빈(李鎬斌) 목사(강남대학 설립자인 李浩彬 목사와는 동명이인), 전진규 목사,  해방 후에는 이진구 목사가 원산중앙감리교회를 섬겼다.

    
                     ▣ 민족운동과 사회선교에 앞장 선 교회 ▣

원산중앙감리교의 역대 담임목사들 가운데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와 순교자가 여러분 있다.
오화영 목사․정춘수 목사․신석구 목사가 민족대표인데 그 가운데 정춘수 목사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제에 적극협력하여 대표적인 친일인사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신석구 목사와 전진규 목사는 공산정권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다.

원산에서는 다른 많은 지방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다른 지방에서는 3월 1일이 지난 다음에 만세운동이 일어난 경우가 많았는데 원산의 3․1 만세운동은  서울과 같은 3월 1일에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3월 1일은 원산의 장날이었는데 오후 2시에 각 교회에서 종이 울리자 원산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13명의 지도자들이  약속한 장소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장촌동 시장으로 행진해서 규모가 큰 만세운동을 벌였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들이 체포되어 옥중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원산시민들이 다시 일어나 2차 만세운동을 벌였고 그 뒤에도 만세운동이 계속되었다.  

원산에서는 교회가 중심이 되어 원산 YMCA운동, 의료선교활동, 루씨고녀(樓氏高女) 설립과 운영 등 교육선교,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원산중앙감리교회는 도서관과 지역사회 주민들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구락부(俱樂部)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크게 봉사했다.

해방 당시 원산중앙감리교회의 주소는 함경남도 원산부 남촌동 99번지였는데 이곳은 지금  강원도 원산시 신흥동이 되어 있다.
신흥동은 원산항구와  바로 연결된, 시 중심부 가운데에서도 중심부이다.  

〔보완․정정이 필요한 부분이나 의견이 있으신 분은 yookj44@hanmail.net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
캄보디아에서 선교활동 중인 정재헌 형제가 원산중앙감리교회의 처음 글을 보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지적한 부분을 확인하여 수정하였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가 정확하고 풍성한 기록이 되도록 수정과 보완이 더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알려드립니다>

원산중앙감리교회를 세운 하디선교사는 이어 1901년 6월에 양양감리교회를 설립했고, 또 강릉중앙감리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양양감리교회(담임목사 김한구)는 이 사실을 생각하며 부속 양양유치원(1935년 설립, 강원도 최초의 유치원)의 이름을 ‘하디 어린이 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원산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기금을 계속 적립하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21  (0021)구세군 해주영문(海州營門)      유관지 2012/11/06
20  (0020)해주성결교회      유관지 2012/10/30
19  (0019)함흥중앙교회      유관지 2012/10/30
18  (0018)진남포중앙감리교회(현 남포특별시 소재)      유관지 2012/10/30
17  (0017)연동(燕洞)교회(평남 안주 소재)      유관지 2012/10/23
16  (0016)회령(會寧)교회      유관지 2012/10/23
15  (0015) 재령동부교회      유관지 2012/10/23
14  (0014)정주읍(定州邑)교회(평북 정주군 소재)      유관지 2012/10/18
13  (0013)조강(祖江)감리교회      유관지 2012/10/05
12  (0012) 개성남부감리교회      유관지 2012/10/05
11  (0011) 신의주서부성결교회      유관지 2012/10/05
10  (0010)강계읍(江界邑)교회(일명 남장대교회)      유관지 2012/09/25
9  (0009)황주읍(黃州邑)교회      유관지 2012/09/25
8  (0008) 남산현감리교회(평양)      유관지 2012/09/25
7  (0007) 신창(新昌)교회(함남 북청군 소재)      유관지 2012/09/25
6  (0006)가물남(嘉物南)교회(평북 선천 소재)      유관지 2012/09/25
 (0005)원산(元山)중앙감리교회      유관지 2012/09/13
4  (0004)용암포(龍岩浦)제1교회      유관지 2012/09/13
3  (0003)신의주제2교회      유관지 2012/09/13
2  (0002)장대현(章臺峴)교회      유관지 2012/09/13

[1][2][3][4][5] 6 [7]

 
 
 
 
[최근칼럼]
[김명혁] “아버지 김관주...
[유관지] (0121) 신촌(新...
[남상순] 주는 자의 복
[이광우] 가장 큰 은혜
[박성일] 슬기로운 신앙생...
[김학현] 사람을 찾습니다...
[김종춘] 일단 맞서면 자...
[안정기] 함께 하면 강합...
[오디오칼럼] [보이는 오디...
[영상칼럼] 2021년 신년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