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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20) 단천읍(端川邑)교회(함남 단천)



                                         단천읍(端川邑)교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동휘(李東輝) 선생과 관계 있는 교회-



함경남도 단천시는 납과 아연을 많이 생산하는 검덕(檢德)광산, 마그네사이트를 채굴하는 룡양(龍陽)광산 등, 광산이 여럿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단천에는 제련소도 있고 공업대학들도 있고, 휴양소도 있다.
북한의 대표적 매체인 「로동신문」에는 검덕광산과 룡양광산에 관한 기사가 자주 실린다.
검덕광산은 지금은 검덕광업련합기업소라는  이름으로 단천시의 대표적인 기업이 되어 있다.
검덕광산은 원래는 은을 생산하던 곳으로서, 일제가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노동을 시킨,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단천에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르는데 남대천의 물은 공업용수, 관개용수, 식수로 잘 사용되고 있다.  
단천에는 북대천(北大川)도 있고 복대천(福大川)도 있다.

                                
                             ▣ 차을경, 그리고 선교사와 조사들 ▣

단천읍교회는 함경남도의 교회들에 대해 말할 때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차을경(車乙慶)에 의해, 1899년에 설립되었다.
차을경은 평안도 사람이었는데 고향에서 말썽을 많이 부려 고향에서 살 수 없어서 함경도 갑산으로 피신을 했다가 원산에 갔다가 전도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차을경은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찾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이 때 단천에도 들려 전도를 했다.
차을경은 함경도 지역에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단천읍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차을경은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에는  스왈른(W.L. Swalen ; 蘇安論) 선교사와 조사인 전군보(田君甫), 이기풍(李基豊)이 이 지역에서 열심히 전도하였다.
스왈른 선교사는 1892년에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평양으로 옮겼다가 1894년부터 원산을 중심으로 일했다.
이 때  함흥을 비롯하여 단천 등 함경도 일대를 순회하며 전도했다.
스왈른은 그 뒤에 다시 평양으로 가서 33년을 일했다.
그는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  “내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고서”(326장)를 작사했다.

전군보 조사는 한국교회 초기의 열심 있는 전도인으로서, 불량배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던 이기풍에게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스왈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한 인물이다.

그 후에는 함경도 지역의 교회에 대해 말할 때 역시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  그리어슨(R. G.Grierson : 具禮善) 선교사와 조사 홍순국(洪淳國)이 열심히 전도를 했다.
이들은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같은 헌신적인 수고로 믿는 이들이 늘어 단천읍교회의 기틀이 잡혔다.

홍순국은 그리어슨 선교사와 함께 많은 일을 한 분인데 나중에 목사가 되어 함경도와 북간도 지녁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개척 선교사로 수고를 했다.
그는 1930년대에는 원산 YMCA 초대 총무를 지냈다.  


                                  ▣ 예배당을 계속 확장하다 ▣

단천읍교회는 처음에는 박창영(朴昌英)의 집에서 모였다.
박창영은 그 뒤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함경도 지역에서 일했다.
그는 캐나다 선교사인 럽(A. F. Robb : 鄴亞力)과 함께 오래 일했다.
박창영 목사는 시베리아 노회가 설립될 때 선교사로 파송되어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했다.
단천읍교회 초기 교인 가운데 김병수(金炳洙)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교육가, 실업가, 농촌계몽가, 독립운동가로서 항상 “예수 잘 믿고 젊은이들을 잘 가르치고, 산업을 일으키라, 그래야만 나라가 독입이 된다!” 고 외쳤다.
이 분은 보구(普救)학교와 용진(勇進)학교를 세웠다.

단천읍교회는 교회당을 여러 번 확장했다.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박창영의 집에서 모이다가 예배당을 지었는데 이 때 박창영은 자기 집을 바쳤다.
그리고 그리어슨 선교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교인들이 계속 늘어 새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부지를 구입했는데 그 부지가 국유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교회에서는 읍내에 있는 옛 관청의 건물〔作廳〕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상하게 단천읍교회와 관련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아, 교역자에 대해서도 1940년대에 장세환(張世煥) 목사가 담임했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았다.
단천읍교회의 주소도 ‘단천읍’이라고만 되어 있지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아마 교회당을 여러 번 옮겼기 때문인 것 같다.


                                  ▣ 인물을 많이 배출한 단천 ▣


독립운동가 이동휘(李東輝) 선생은 단천 출신으로 단천 관아의 통인을 지내기도 했다.
이동휘는 구한말의 군인으로 강화친위대장을 지냈는데 한일합방 후 독립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그리어슨 선교사의 영향으로 믿음을 갖고 전도에 열심을 기울였다.
그는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는데 나중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동휘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고 2013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이분을 선정하였다.
이동휘 선생이 단천읍교회의 설립멤버의 한 분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건국대학 설립자 유석창(劉錫昶) 박사, 세종대학 설립자 주영하(朱永夏) 박사, 일본 동경교회를 담임했던 오윤태(吳允台)목사, 이 여러분이 모두 단천 출신으로 단천읍교회와 관계가 있는 분다.

단천읍교회는 원래 함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1925년에 함중노회가 조직될 때 함중노회 소속이 되었다.
함중노회는 이름 그대로 함경도의 중간부분에 있었던 교회들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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