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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16) 황해도의 성결교회들



                                         황해도의 성결교회들
                -1934년 당시 황해도에는 아홉 개의 성결교회가 있었다-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는 이번으로 116번째인데, 그동안 성결교는 신의주서부성결교회(0011), 해주성결교회(0020), 신의주동부성결교회(0033), 진남포성결교회(0044), 이렇게 넷만 다루었다.
해방 이전 한국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특히 장로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밖의 교파들은, 그 교파에 속한 교회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다루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 사리원성결교회, 안형주 목사 ▣


1934년 4월을 기준으로 할 때 황해도에는 성결교회가 아홉 개가 있었다.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으로는 1938년에 있었던 교회들의 명단을 기초자료로 하고 있다.
그 이후는 교회관련 기록들이 빈약하고, 그나마 대부분 일본어로 되어 있고, 분명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사, 특히 북한교회사 연구를 깊이 한 일본인 목사 사와 마사히코(澤正彦: 작고)도 일찍부터 1938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될 수 있으면 북한에서 교회들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있었던 교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쓰고 있어서  때로는 1950년, 6․25 전쟁 전후까지  남아있던 교회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황해도에 있었던 성결교에 대해 말하면서 1934년, 제2차 총회 기록을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1936년 제3차 총회 다음에 성결교가 분열되어서 ‘하나님의 교회’가 갈라져 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리원하나님의교회(0026)’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때의 정확한 기록을 구하기 어려워서 하는 수 없이 분열 이전의 기록인 1934년 자료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사리원(沙里院) 성결교회, 이 교회는 1929년 10월에 설립되었다.
당시 주소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면 북리(北里) 48번지였다.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은 황해북도 사리원시가 되었다.
사리원시는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이다.
북리는 1955년에 북일동, 북이동, 북상동, 북사동, 이렇게 네 개의 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사리원성결교회가 있었던 곳이 그 가운데 어디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사리원성결교회를 담임했던 분은 안형주(安衡柱) 목사이다.
안형주 목사는 1930년에 목회를 시작했고, 193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하나님의교회가 분립해 나갈 때 그쪽으로 가서 그 교파의 중심인물로 일했다.

그 다음, 재령의 북률(北栗)성결교회, 이 교회는  1929년 10월에 설립되었다.
북률성결교회의 주소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신흥리였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황해남도 재령군 동신흥리로서 서강과 재령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당시 북률교회는 신학교에 재학중인 최헌(崔獻)전도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이 분은 1932년에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목회를 시작했다.

이어서 겸이포(兼二浦)성결교회, 1932년 7월에 설립되었고 주소는  황해도 겸이포 본정(本町) 78번지였다.
‘본정’은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데 겸이포는 일본이 세운 큰 제철소를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여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해방 뒤에 황해북도 송림시(松林市)가 되었다.
당시 겸이포성결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분은 김제근(金濟根) 전도사였다.


                            ▣ 좌우익의 충돌이 심했던 신천 ▣

다음에는 서흥군(瑞興郡)에 있었던 신막(新幕)성결교회, 1932년 4월에 설립되었고, 주소는 황해도 서흥군 화회면(禾回面) 신막리 223번지였다.
신막리는 새로 생긴 주막이 있는 동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현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서훙군 서흥읍이다.
당시 조정헌(曺正憲) 전도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이어서 매양(梅陽)성결교회, 매양성결교회도 서흥군에 있었다.
주소가 황해도 서흥군  매양면 록안리(祿鞍里) 340번지였는데, 록안리는 푸른 벌판을 끼고 있고 말안장처럼 오목하게 들어앉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의 현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서흥군 대평리(大坪里)이다.
매양성결교회의 창립일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다음, 해주성결교회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말 한 일이 있으니(0020). 그 기록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이어서 신천(信川)성결교회, 신천은 해방 후에 좌익과 우익의 충돌이 아주 심했던 곳이다.
신천성결교회는 1933년 1월에 설립되었고 주소는 황해도 신천군 신천면 척서리(滌暑里) 260번지였다.
척서리라는 이름은 더위를 씻어주는 척서정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정자가 지금도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황해남도 신천군 신천읍이다.
신천성결교회는 당시 신학교에 재학중이던 신대균(申大均)이 담임하고 있었다.

다음은 연안(延安)성결교회, 연안성결교회는 1932년 10월에 설립되었고 주소는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 모정리(模井里)였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황해남도 연안군 연안읍이다.
연안성결교회는 당시  신학교에 재학중이던 이봉권(李鳳權)이 담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황주(黃州)성결교회, 황주성결교회는 1934년에 설립되었고 주소는 황해도 황주군 황주읍이었다.
황주군은 지금 황해북도에 속해 있다.
황주성결교회는 박문익(朴文翼) 전도사가 담임했는데 이 분은 나중에 중국 동북지역에 가서 목회를 하였고 해방 후 원산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도곡산(道谷山) 성결교회, 곡산(谷山) 성결교회, 이런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총회록에 첨부된 공식주소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내용을 작성할 수 있도록 성결교 총회록을 제공해 주신 경남 김해의 교회사 자료수집 전문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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