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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07) 홀동(笏洞)교회(황해도 수안군)



                                           홀동(笏洞)교회
                                       -금광에서 시작된 교회-



홀동교회는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구면(水口面) 보광리(寶光里)에 있었는데 보광리의 옛 이름이 홀동이었다.
‘홀(笏)’은 조선왕조 때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손에 쥐던 패를 말하는데, 옛날에 임금을 따라 왔던 어떤 관리가 그만 홀을 여기에 두고 간 일이 있어서 이곳을 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홀동에는 금광이 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해방 직전에 홀동금광의 금광석을 진남포의 제련소에 운반하는 사업을 했다.
홀동은 보물이 빛을 발하는 곳이라고 하여 보광리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보석리(寶石里)가 되었다.
해방 후 이 지역을 로동자구로 승격시킬 때 옛 이름을 찾아 ‘홀동로동자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 백여배와 그의 친구들의 기도 ▣


홀동광산은 북한의 대표적인 금광 가운데 하나이다.
운산읍감리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0104번) 미국인들이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인수해서 큰 수익을 올렸다고 했는데 홀동광산도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채굴권을 가지고 있었다.
6․25 전쟁 후에는 국군포로 여러 명이 홀동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홀동교회는 1910년 겨울에 설립되었다.
백여배(白汝培)라는 평양의 기독교 신자가 친구 6, 7명과 함께 홀동의 금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광산의 주인은 주일에도 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백여배는 매일 밤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기도를 했다.
주인의 마음을 바꿔서 주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마음을 바꿔서 주일에는 일을 쉬고  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하였다고 한다.
백여배와 그의 친구들은 석건리(石建里)에 있는 집을 빌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교회가 홀동교회이다.

그 때  여러 곳에서 교인들이 금광에 왔는데 백여배와 친구들의 영향으로 주일을 지키지 않던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던 이들이 정직한 생활을 하니까, 교회가 날로 부흥해서 한 달 만에 석건동에서 홀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홀동으로 이사한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교인이 70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힘써 연보하여 예배당을 매입했고, 1911년 6월에는 학교도 설립하였다.


                 ▣ 홀로크로프토 선교사 ▣

초기에는 홀로크로프토(J. G. Holdcroft: 許大殿)선교사가 홀동교회를 지도했다.
홀로크로프토 선교사는 1909년에 한국에 왔는데 교육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총무로 오랫동안 수고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미국북장로회는 홀로크로프토 선교사와 솔타우(T. S. Soltau: 蘇悅道), 로드(H. S. Rhodes: 盧解理) 선교사에게 이 문제의 전권을 위임했다.
이들은 우상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이름이 붙었다.

홀로크로프트 선교사는 해방 뒤에 고려신학교가 설립되는 일과 고신파가 출범하는 일에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홀로크로프트 선교사가 홀동교회를 지도하고 있을 때 조사로 그를 도운 분이 최선탁(崔善鐸)이다.
최선탁은 홀동교회 조사생활을 하면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다녀, 1913년에 제5회로 졸업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황해도 수안군 일대에서 옥연동(玉蓮洞)교회, 흥동(興洞)교회를 담임해서 목회하다가 중국 동북지역으로 갔다.
최 목사는 간도 일대, 지금 연변지역에서  목회하다가 그곳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홀동교회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1913년 8월에 최원탁(崔元鐸)이 영수로 시무하다’는 것이 있는데 최원탁 목사와 최원탁 영수가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형제, 또는 사촌 간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 언진산맥이 지나는 곳에 ▣


1915년 11월에 전관일(全觀一)목사가 부임했다.  
전관일 목사는 1915년(제8회)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홀동교회를 비롯하여 수안군과 곡산군의 여러 교회를 담임했다.

그 뒤의 담임자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할 때 수안군의 북부지역을 떼어 연산군(延山郡)을 새로 만들었다.
홀동교회가 있었던 지역도 연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홀동교회의 옛 주소는 황해도 수안군 수구면 보광리인데 이곳의 현재의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연산군 홀동로동자구이다..
홀동로동자구는 연산군의 동부 지역인데 남쪽으로는 언진산맥에 속한 높이 1,120미터의 언진산(彦眞山)이 있고 홀동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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