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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12) 재령(載寧)중앙교회(황해도)



                                         재령중앙교회
              -일제강점기말에 태어나서 해방 직전에 문을 닫은 비운의 교회-


재령중앙교회가 있었던 황해도 재령에 대해서는 재령동부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0015) 언급한 일이 있다.


                                          ▣ ‘기독교 천하’ 재령 ▣


그때, 농경지가 많은 곳으로서, 북률미(北栗米)라는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고, 복숭아가 유명하고,  천주교가 아주 강했고, 그리고 장로교 선교사들이 여럿 활동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재령은 개신교, 특히 장로교가 매우 왕성했었던 곳이다.
재령에는 미 북장로교의 선교기지가 세워져서 장로교의 황해도 선교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했다.
재령에는 재령동부교회를 비롯해서 교회들이 많았다.
재령동부교회의 처음 이름은 재령읍교회였다.  
재령에는 교회에서 세운 명신(明新)학교와 제중병원이 있었고, 재령성경학교가 있어서 교역자를 양성했다.
1920년대에 천도교에서 발행하던 「개벽」이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에 ‘재령에서는 모든 것이 기독교가 중심이다. 재령은 기독교 천하이다’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기독교가 강했다.


                                      ▣ 헌트 선교사 부자 ▣


재령중앙교회는 일제 강점기 말이라고 할 수 있는 1938년에 설립되었다.
재령의 동부지역에는 재령동부교회가 있었고, 서부지역에는 재령서부교회가 있었는데 중부지역에는 교회가 없었다.
북장로교 재령선교기지를 책임지고 있던 헌트(W.B. Hunt; 韓緯廉)선교사가 중부지역에도 교회가 있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동부교회와 서부교회의 양해를 구한 다음에 일신리(日新里)에 가옥을 매입하고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1938년은 잘 아는 것과 같이 신사참배를 가결한 27차 총회가 열린 해이다.
한국교회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서, 있던 교회 가운데에도 문을 닫는 교회들이 생기고 있었는데 새로운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재령중앙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교인이 수백 명에 이르게 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헌트 선교사가 수고했다.
헌트 선교사는 ‘재령 선교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헌트 선교사의 아들은 부르스 헌트(Bruce F. Hunt; 韓富善)인데 이 분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이 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와서 청주를 중심으로 농촌선교에 힘썼다.  
이 분은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을 섰는데 신사참배를 가결한 27차 총회에서 유일하게 반대발언을 하며 항의하다가 강제로 끌려 나갔다.
그 뒤 중국 동북지역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계속하다가 일제에 의해 옥고를 겪었다.
그리고 강제추방 당했다.
해방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고려신학파 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은퇴하여 미국으로 돌아갔다.


                                              ▣ 단명(短命)교회 ▣


재령중앙교회의 초대 담임자는 홍순택(洪淳澤) 목사이다.
홍순택 목사님은 주일학교, 성가대, 남녀전도회, 청년회 등을 조직하고 전도에 힘쓰면서 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그 다음에는 황상호(黃尙浩) 목사가 부임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재령중앙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본 당국은 1942년에 한국의 각 교파를 없애고 한국교회를 ‘일본기독교단 조선교단’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일본교회 밑에 예속시켜 버렸다.
그리고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8월에는 예배당들을 폐합하여 예배당 숫자를 줄였다.
재령중앙교회는 이 때 문을 닫게 되었다.
교인들은 재령동부교회와 서부교회로 흡수되었다.
해방이 되었을 때 문을 닫았던 교회들은 대부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재령중앙교회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 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교인들은 대부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다.

재령중앙교회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세워져서 해방 직전에 문을 닫은, 그러니까 7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비운의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재령중앙교회가 처음 세워진 곳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 일신리였다.
일신리는 ‘날로 번성하는 새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런데 재령중앙교회가 세워진 해인 1938년에 나온  장로교 주소록에는  재령중앙교회의 주소가 재령군 재령면 남정리(楠亭里)로 되어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남(楠)’은 들메나무라는 뜻인데 들메나무정자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남정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일신리와 남정리의 현행 행정구역은 모두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이다.
은파역과 은율역을 연결하는 은율선(殷栗線)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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