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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36) 생기령(生氣嶺)교회(함북 경성군 소재)




    생기령(生氣嶺)감리교회
   -성경적인 이름을 가진 곳에 세워진 교회 -


앞의 사룡리(寺龍里)교회 편에서는, 교회에서 좋아하지 않는 글자들이 합해진 지명을 가진 지역에,  이름과 상관없이 교회가 개척, 설립되고 성장했다는 것을 말했다.
오늘 소개되는 생기령감리교회는 사룡리교회와는 반대로 아주 성경적인 이름을 가진 곳에 세워진 교회이다.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라는 말씀이 있다.


   ▣ 김진호 목사의 수고로 세워진 교회 ▣


생기령감리교회는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 직동리(直洞里)에 있었다.
주을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생기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가 있다.(함북 무산군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고개가 있다.)
생기령 고개 밑에 샘물이 있었는데 이 샘물을 마시면 생기가 솟아 고개를 단숨에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해방된 다음에 북한은 주을읍 직동리를 생기령리라고 이름을 바꿨다.

생기령에서는 질이 아주 좋은 고령토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생기령에서 생산되는 고령토는 사기그릇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도자기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다.

생기령감리교회는 1942년 4월에 설립되었다.
원래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구역이어서 감리교회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서 선교지역분할정책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 감리교가 청진을 중심으로 함경도에 진출하게 되었다.
감리교 본부(총리원)에서는 김진호(金鎭浩) 목사를 청진으로 파송했다.(청진감리교회와 김진호 목사에 대해서는 0028번을 볼 것)

1940년에 청진에 부임한 김진호 목사는 그 일대에 다섯 개의 감리교회를 세웠다.
먼저 청진감리교회를 세웠고 그 다음 해에는 경성감리교회를 설립했고, 그 다음 해인 1942년에는 주을과 생기령에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어항이란 곳에도 교회를 세웠다.

생기령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고령토 탄광이 있어서 각 지방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김진호 목사는 “여기에 감리교회를 세웠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곳의 전한영이라는 분과, 이연수라는 분의 협조를 얻어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900원의 돈을 들여서 620평 대지에 여덟 칸 초가를 사서  예배당으로 삼았는데 약 삼십여 명의 성도가 모였다고 한다.

김진호 목사는 「북선전도약사(北鮮傳道略史)」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북선전도약사」에 이 때의 일이 잘 기록되어 있다.
그대로 옮기면,

   주을은 함경북도의 번화한 도시인데 온천으로 유명하고 탄광이 가까우며 사기(砂器)와
   질그릇이 많이 제조되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기
   바라며 기도를 드리던 중, 마침 감리교 전도사 김태옥 씨가 만주로부터 주을에 들어와
   철공업으로 생활비를 벌며 전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김 전도사의
   전도활동은 바울 사도가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전도를 한 것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1942년 2월, 김태옥 씨의 교회설립 청원을 본부에 보고하였더니, 정춘수 감독에게서
   인가가 났다. 작은 집을 하나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남녀 교우가 이십여
   명으로 금세 늘어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로교회가 있었는데 교우들이
   서로 왕래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다.
   당시 나는 탄광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생기령에도 교회를 설립했으면 하고
   기도중이었다. 그러던 중 생기령에 살고 있던 전하영 속장과 이연수 속장의 청원으로 같은
   해 4월에 설치가 인가되어 전도사 노춘섭 씨가 교회를 맡게 되었다. 생기령교회 역시 구백
   원의 돈을 들여 작은 집을 하나 사서 약 삼십여 명의 교우가 모이게 되었다.


                             ▣ 노춘섭 전도사 ▣


생기령감리교회의 초대담임자는 노춘섭(盧春燮) 전도사였다.
노춘섭 전도사는 당시  65세였는데 원래 장로교 교인으로 함경북도 북부 지역에서 전도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노춘섭 전도사는 신비주의라고 할까, 열광주의라고 할까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한 때는 교회가 어려움을 겪어 예배를 드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다시 문을 열고 36명의 교우가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노춘섭 전도사 외에 신종악 장로, 김대일 장로, 이런 분들이 교인들을 지도했고 한 때 김득수 목사란 분이 교회를 지도한 일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되던 「기독교신문」 소화 17년(1942년) 11월 18일 자에 “전도사 노춘섭 씨의 미거”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노춘섭씨는 당년 65세의 노령 전도사로서 함북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올 때부터 주를 믿고
   열심히 전도하여 지금 무산(茂山), 부령(富寧), 회령(會寧), 경성(鏡城)등 각처에 널려 있는
   장로교회가 다 그가 설립한 교회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그가 생활고와 병고로
   싸우는 중에 감리교회가 처음으로 경성 지방에 들어와 전도를 시작하고 여러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는 자리에 그도 함께 참석하여 기도한 결과 주님의 도우심으로 신병도 완쾌함
   을  얻어 전보다 더욱 열심히 전도할 힘을 내여 교회 설립에 전력을 다하여 신앙동지인
   신종악(申鍾嶽)씨와 김광호(金光浩)씨 두 분과 손을 마주 잡고 힘써 전도하여 목사와
   전도부인을 청빙하고 함북에 유일한 자립교회를 만들어놓고 그가 전도사로 추천되여
   경성교회를 중심으로 지교회를 주을에다 설립하고 생기령에도 설립하게 되었었다.
   그동안 노 전도사의 장남인 노상철(盧相哲)군은 본래 불신자로 부친의 신앙을 부인하고
   자유로 집을 떠나 만주등지로 돌아다니다가 십여 년 만에 집에 돌아와 보고 온 빕안이
   신앙생활로 은혜가 충만함을 보고 자기도 통회자복하고 믿기로 작정하였으며, 근일에
   그 아들이 근검저축한 금전으로 부친의 생활을 돕는 중에 얼마를 가지고 부친의 회갑
   잔치를 차릴려 하는 것을 부친이 아들의 청을 거절하고 그 돈을 달라하여 주을교회에
   600원과 생기령교회에 700원을 기부하였다. 이 두 교회는 이 헌금을 기금으로 하여
   주을교회에서는 건물만 있는 집을 사고 생기령교회에서는 기지 620평과 초가 8간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됨으로 일반교우들은 모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노 전도사의 공로를 감사하여 마지않는다고 한다.


                          ▣ 평라선이 통과하는 곳▣

생기령감리교회가 있었던 지역의 현재 행정구역은 함경북도 경성군 생기령로동자구이다. “로동자구”는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붙이는 행정구역 이름인데 이곳에는 고령토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생기령로동자구는 경성읍에서 십리 밖에 안 떨어진 곳인데 경성은 1900년을 전후해서 40년 간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였다.
함경도라는 이름은 함흥에서 ‘함’을 따고, 경성에서 ‘경’을 따서 만든 것이다. 경성은 그만큼 번성한 곳이었다.
생기령감리교회가 있었던 생기령로동자구는 평라선(平羅線) 철로가 통과하고 청진으로 가는 도로도 있어 교통이 아주 편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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