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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28) 청진감리교회




  청진감리교회
  -장로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감리교회  -


청진은 함경북도의 도 인민정부 소재지이고, 북한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큰 도시로서, 한 때는 직할시였었다.
우리나라의 ‘구(區)’를 북한에서는 ‘구역’이라고 하는데, 구역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몇 되지 않는다.
청진에는 일곱 개의 구역이 있고, 동은 무려 93개, 14개의 리(里)가 속해 있다.
청진은 청암산이라는 산 앞 나룻가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교구역 분할 원칙이 깨어지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선교지역을 나눌 때 함경남북도는 캐나다장로회가 선교를 담당하기로 결정되어서 함경도에는 장로교회들이 많았다.
그밖에 성결교회와 침례교, 그리고 구세군의 영문이 한두 개씩 있었고 감리교회가 없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선교지역 분할 원칙이 깨졌다.
선교지역 분할 협정은  선교부들끼리의 협약이었는데  한국인 목사들이 교회를 이끌게 되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1939년 5월 3일부터 10일까지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제7회 동부․중부․서부 합동연회의 전도위원 보고에는 “二. 금번 연회에서 좌기사항을 긴급히 결의하야 연회 즉후로 실행하기를 요망함. 1. 기위 장감구역이 철폐된 이상 중요 지역에 감리교회를 확장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1940년대 전후해서는 장로교는 감리교 선교구역이었던 곳, 감리교는 장로교 선교구역이었던 곳에 선교에 더욱 힘쓴 흔적도 있다.


                                  ▣내분이 심한 상태에서 출발하다▣


청진감리교회는 1940년 1월 23일에 설립되었다.
안흥석이라는 감리교인이 청진으로 이사 와서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전도를 했는데 청진이 워낙 큰 도시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이들이 감리교 본부에 정식으로 교회를 설립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당시 감리교에서는 본부를 총리원이라고 불렀는데 감리교 총리원에서는 전도국 위원장을 보내 현지조사를 하게 했다.
전도국 위원장 오기선 목사가 청진에 다녀와서  청진은 대단히 번성하는 도시이고 그곳의 감리교인들이 열심이라고 보고했다.
총리원에서는 이 보고를 듣고 교회 설립을 인준해서 청진감리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교회가 시작될 때 입교인이 31인, 세례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학습인이 6인, 믿기 시작한 원입인이 수십 명이 있었다.
상당히 규모가 큰 상태로 출발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설립 전후부터 내분이 아주 심했다.


                           ▣애산 김진호 목사▣


당시 감리교는  감독이 교역자를 어느 곳에든지 파송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파송제를 갖고 있었다.
총리원에서는 김진호(金鎭浩) 목사를 파송했다.
김진호 목사는 당시 서울의 삼청동교회와 궁정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었고, 우리 나이로 68세였다.  
청진감리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아까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교인들끼리 다툼이 심했는데. 총리원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목회경험이 많은 중진목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김진호 목사를 파송한 것 같다.

김 목사는 청진에 가셔서 많은 수고를 하고 청진 주변의 어항·경성·주을·생기령 감리교회도 이끌었다.
감리교의 청진 선교는 김진호 목사님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진호 목사님의 호는 애산(愛山)이며 목사이면서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고 한학을 공부해서 훈장생활도 했으며 시험을 거쳐 재무공무원 생활을 잠시 했는데 일본인 상관과 마찰이 얼어나 그만두었다.
상동교회에 출석하면서 민족운동 지도자인 전덕기(全德基)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다.
1916년부터 배재학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치면서 배재와 깊은 인연을 맺었고, 민족대표 가운데 한 분인 이필주(李弼柱) 목사가 정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정동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진호 목사는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배재학교 학생들과 함께 이 일을 했다.
이 일로 옥고를 겪었고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도 배재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천 내리교회를 섬기다가 배재학교 교목으로 부임해서 일하다가 정년퇴임하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삼청동교회와 궁정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가 청진으로 간 것이다.


                    ▣「북선전도약사(北鮮傳道略史)」▣

김진호 목사는 청진을 비롯해서 함경북도 일대에서 전도한 일을 자세하게 적은 「북선전도약사(北鮮傳道略史)」라는 기록을 남겼다.
김진호 목사는 청진에서 8·15 해방을 맞이했는데  「북선전도약사」에서  8·15 해방을 ‘사변(事變)’이라고 적었다.
사변이라는 것은 천재나 변고, 내란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본이 항복을 하자 곧 소련군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공산당의 통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해방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북선전도약사」에는 소련군의 군정 치하에서 교회가 겪은 어려움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김진호 목사도 소련군에 의해 50여일 간 구금되어 많은 고생을 했다.


                              ▣유득신 목사▣


청진감리교회의 2대 담임목사이며 동시에 마지막 담임목사님은 유득신(劉得信) 목사였다.
유득신 목사 역시 배재학교를 졸업했고 독립운동가였다.
유 목사는 평안북도와 중국동북지역에서 목회를 하였고 김진호 목사의 부탁으로 청진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는데, 6·25 전쟁 때 철원에서 공산군에게 순교당했다.

청진감리교회는 예배처소를 여러 번 옮겼다.
설립될 때는 함경북도 청진부 포항동 87번지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다음에 경실학교(景實學校)로 옮겼다가,  고아원에서 예배드리다가 1945년에 화원동 23번지로 옮겼는데, 그 집을 사서 감리교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이 화원동이라는 이름은 청진이나 그 주변의 과거와 현재 행정구역을 모두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청진감리교회는  첫 예배를 드린 포항동은 확장되어 지금은 포항구역이 되었다.
포항구역 안에는 열네 개의 동이 있는데 청진의 남부지역에 있으면서 포항의 중심지이다.

청진감리교회는 감리교 원산지방에 속해 있었다.
원산지방은 원래 동부연회에 속해 있었는데, 1945년에 분단이 된 다음에는 서부연회에 속하게 되었다.
분단 이후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등 북한지역에  있던 교회들은 서부연회 관할하에 있었다.


〔청진감리교회 이야기의 토대가 되는 김진호 목사의 「북선전도약사」를 제공해 준 김주황
목사(김진호 목사의 손자, 경기도 용인 애산감리교회를 담임)께 감사를 드립니다.
「북선전도약사」는  2011년에 출간되었는데 관련 사진들이 여럿 실려 있어 그 때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고, 김진호 목사님의 친필로 작성된 세례인 명부 사본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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