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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00) 신시(新市)교회(평북 구성)


                     ◉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 10회를 맞아 드리는 인사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가 100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를 아껴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는 ①평안북도에 있었던 장로교회, ②함경도에 있었던 장로교회, ③황해도에 있었던 장로교회, ④평안남도에 있었던 장로교회, 그 다음에는 ⑤감리교회를 비롯해서 장로교가 아닌 교파에 속해 있었던 교회들, 특히 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부지역에 있었던 교회들, 이런 순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방 전에 북한에 있었던 교회들의 숫자를 고려해서 구성한 순서입니다.

해방 전에 북한 지역에는 장로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우선,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고, 열심이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처음에 선교지역을 나누어서 선교했는데 북한의 많은 지역을 미 북장로회에 캐나다장로회가 담당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에서 교파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은 교회는 모두 장로교회들입니다.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한 번씩 원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신시(新市)교회
                          -학당(學堂)을 빌려 예배드리며 출발한 교회-


신시교회는 평북 구성군(龜城郡) 사기면(沙器面) 신시동(新市洞)에 있었다.
신시교회는 1895년에 세워졌다.
우라나라에 선교사들이 공식으로 들어오기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힌 분이 김이련(金利鍊)이다.
김이련은 의주 사람인데 사돈인 백홍준(白鴻俊)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
백홍준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인이고, 최초의 순교자이다.
예수를 믿게 된 김이련은 가족과 함께 열심히 전도했다.
이 김이련과 그의 차남 김관근(金灌根)이 사무엘 마펫(馬布三悅) 선교사의 요청을 받고 구성 인근에 전도하여 여러 사람이 믿게 되었다.
이들은 예배 드릴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김이련이 주민들과 협의하여 학당을 건립하고 주일에는 교인들과 학생들이 함께 학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였다.
신시교회는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김이련은 진사시(進仕試)에 합격한 유학자이며 개화주의자였다.


                                      ▣ 신시교회를 위한 봉헌들 ▣


신시교회는 이렇게 해서 설립되었는데 이 때 그 학당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분이 양전백(梁甸伯)이다.
양전백은 원래 의주 출신인데 집안이 가난해져 구성으로 옮겨서 살고 있었다.
이 양전백은 나중에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 가운데 한 분이 되었고, 3․1운동 때 민족대표 가운데 한 분이었으며, 선천을 기독교 도시로 만드는데 중심인물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는 교회당을 짓지 않고 학교를 빌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여럿 있는 데 신시교회가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청일전쟁 때 이 학당이 폐지되었다.
다시 예배 드릴 곳이 없게 되자 양전백이 자신의 집을 팔아 돈 4백량을 헌금하고 그라함 리(李吉咸) 선교사가 2백량을 보조해서 초가집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1930년에는이득하(李得河)라는 교인이 상당히 큰 면적의 밭을 교회에 헌납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신시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이득하는 남편을 잃은 분인데, 신의주제일교회를 담임했던 윤하영 목사의 장모가 되는 분이다.
신시유치원은 이득하를 설립자로 기록하고 있다.

또 함실녀(咸實女)라는 교인이 1만여 평의 토지를 교회에 헌납하였다.
함실녀 부인 역시 혼자 사는 분이었다.

신시교회는 1934년에 이 두 교인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건립했다.

신시교회는 사기면 인곡동에 인곡동교회를, 관서면 서고성동에 서고성동교회, 그리고 조악동(造岳洞)교회를 설립했다.


                  ▣ 역대 담임자들 - 독립운동가와 반공투쟁가들이 많았다 ▣


설립 초기에는 김관근이 조사로 시무하였다.
그 다음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 10회(1917년) 졸업생인 이원익(李元益) 목사가 담임하였다. 이원익 목사는 의병운동, 임시정부 활동 등 여러 방면에서 민족운동을 하였고 이 때문에 감옥살이도 여러 번 하였다.
해방 후에는 공산정권과 싸우다가 월남해서 경북과 강원도 일대에서 목회하였다.

그 다음 담임자는 평양장로회신학교 14회(1921년) 졸업생인 윤하영(尹河英) 목사이다.
이 분도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해방 후에는 반공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신의주제이교회를 담임했었고, 월남한 뒤에는 충청북도 도지사를 지냈다.

그 다음은 평양장로회신학교 24회(1929년) 졸업생인 최준극(崔俊剋) 목사가 부임했다.
최준극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신시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는데, 최 목사가 신시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교회가 많이 발전했다.

그 다음에는 공성택(孔聖擇) 목사, 1934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 28회(1933년) 졸업생인  허두칠(許斗七) 목사, 1939년에는 33회(1938년) 졸업생인 김준응(金峻應) 목사가 부임해서 시무했다.
이어 김관규(金寬奎) 목사가 이어가며 시무했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양성담 전도사에 이어  김양선(金良善)목사가 시무했다.
김양선 목사는 초대 조사였던 김관근 목사의 아들인데 한국교회 역사가로 잘 알려져 있다. 김양선 목사와 양성담 전도는 나중에 부부가 되었다.
김양선 목사가 신시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에 숭실전문 출신인 탁창신(卓昌信) 목사가 부임해서 1년간 수고했고 이어 원성덕(元聖德) 목사가 부임했다.  
원성덕 목사는 신시교회 출신이다.

이어 김신영 전도사, 방지웅(方之雄) 전도사 등이 계속 시무하였는데  방지웅 전도사는  6‧25 전쟁 중에 공산당에 체포되어 탄광으로 끌려갔다.


                                          ▣ 향산 한영제 장로 ▣

신시교회 출신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수고한 분들이 여럿인데, 그 가운데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분이 한영제(韓永濟)장로이다.
한영제 장로는 기독교문사를 세워 우리나라 문서선교운동에 큰 자취를 남긴 분인데, 평신도로서 유일하게 장로교 통합측 총회장을 지냈다.
이 “북한옛교회들의 이야기”를 준비할 때 「기독교대백과사전」을 많이 참고하는데「기독교대백과사전」을 기획하고 발간한 분이 바로 한영제 장로이다.
이 분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평생 수집했는데  경기도 이천시에 기독교역사박물관을 세우고 그 자료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다.
앞에서 신시교회가 함실녀․이득하 두 분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고 했는데 한영제 장로는 낡은 잡지에서 그 사진을 발견하고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한영제 장로는 구성군 사기면 향산동에서 출생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자기의 아호를 ‘향산(香山)’이라고 지어서 사용했다.

신시교회의 주소는 평북 구성군 사기면 신시동 258번지였는데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천마군(天摩郡) 신시리이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크게 개편하면서 구성군의 일부에 의주군의 일부분을 합해 천마군을 새로 만들었는데 사기면 전체가 천마군에 들어갔다.
신시동은 ‘새당거리’라고도 했다. ‘마을 한 가운데 조성된 새 장거리’란 뜻이다.
또 넓은 벌이 있어서 ‘새벌’, 또는 ‘신평(新坪)’이라고 부르다가 이것이 신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시리에는 경자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고 신시저수지가 있다.
그리고 신시약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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