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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89) 희천읍(熙川邑)감리교회(평북)



    희천읍감리교회
   -규모가 컸던 교회-



희천읍감리교회는 평안북도 희천군(현 자강도 희천시)에 있었는데 희천은 평안북도의 내륙지방이었다.
평안북도 내륙지방은 미 북장로교의 선교구역으로 이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은 대부분 장로교회였었다.
그러나 평안북도 내륙지방 가운데 태천(泰川)․운산(雲山)․희천(熙川)․영변(寧邊)은 감리교 선교구역이었다.
선교구역을 정할 때, 어느 지역에 선교사가 들어가서 일정한 기반을 닦았으면 그 지역은 그 선교사가 속한 선교부의 선교지역으로 인정하기로 했는데 희천은 감리교의 모리스(Charles David Morris: 慕理是) 선교사가 먼저 선교활동을 했다.
모리스 선교사는 북한 전역을 선교구역으로 배정 받아 영변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희천감리교회는 감리교 서부연회 영변지방에 속해 있었다.

    
                           ▣ 희천, 어떤 곳인가? ▣

희천은 북한이 1949년에 자강도를 신설할 때 자강도에 속하게 되었고, 1967년에 시가 되었다.
주변에 묘향산․인달산(仁達山)․천쾌산(天快山)․무동산(舞東山) 등, 높은 산들이 많다.
희천은 북한의 대표적인 중공업도시인데 특히 기계공업이 발달했다.
이곳에 있는 희천공작기계공장은 북한의 아주 중요한 공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북한은 2000년대에 희천에 30만 kw 용량의 희천발전소를 만들었다.
북한은 이 발전소 건립을 ‘강성대국의 기둥사업’이라고 선전했다.
그런데 이 발전소 공사를 무리하게 하느라고 부실공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많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그 때문에 몹시 화를 내다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물이 많은 때도 아닌데 희천댐 물을 방류하는 것이 인공위성 사진에 잡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었다.

                       ▣ 1900년대 초에 복음이 들어가다▣

희천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1900년의 일이다.
희천 소무라는 곳에 살고 있는 한 씨가 원산에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원산에 와서 하디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고 고향에 돌아가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감리교 기록에  “1902년에 희천의 중심지에 신앙고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있는데 이 신앙공동체를 희천읍감리교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신앙공동체는 교통이 불편하고 주민들이 밀집해 살지를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희천의 진명부락에 예배처소가 생겼고, 1903년에는 부생리와 복골에 예배처소가 생겼는데 복골예배당은 네 칸이었다고 한다.
1904년 모리스 선교사 내외가 희천을 방문했는데  서양 사람을 처음 본 주민들이 몰려들어 주막 마당을 꽉 채웠다고 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를 뚫고 안을 들여다보고, 야단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은 모리스 부인은 몇 달 동안 희천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 역대 담임자들 ▣

1906년 송희봉이라는 분이 희천 지역 신자들의 신앙을 지도했다.
송희봉은 희천사람인데 평양에서 매일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선교사들과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1920년대 초반에는 유두환(劉斗煥) 목사(당시 전도사)가 희천읍감리교회를 담임했다.
유두환 목사는 교원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신창 3․1 만세운동을 지도했고, 중국 동북지역에서 독립군 생활을 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평양 감목에서 옥고를 겪고 그 뒤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무렵에 희천읍감리교회를 담임했다.
유 목사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평안도 지역에서 목회하다가 해방 후 월남해서 인천에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1920년대 중반에는 유종학(劉鍾學) 목사가 담임을 했는데 이 분은 계속 평안도 지역에서 목회하다가 6․25 당시 공산군에게 순교당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곽주영(郭周泳)목사가, 1930년대 초반에는 이용국(李龍國)목사(당시 전도사)가 담임했다.
이용국 목사는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목회하다가 1940년대에 하늘나라로 갔다.

1930년대 중반에는 김득삼(金得三)목사가,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되기 전까지는 최일영(崔日永)목사가 담임했다.
최일영 목사는 황해도 일대에서 목회하다가 희천읍감리교회에 부임했다.

희천읍감리교회는 규모가  컸다.
예배당은 42평 규모의 목조기와집이었고, 목사주택과 전도부인 주택이 있었다.
희천읍감리교회는 양성여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양성여학교의 교사는 70평 규모의 목조기와집이었다.
그리고 교회주변에 800평 정도의 밭과 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희천읍감리교회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다.
1929년 연회 보고에 “희천교회는 소학교를 건축 중인데 지금과 같이 힘쓰면 연내로 빚없이 낙성하여 학생을 수용할 줄 압니다”하는 대목이 있고, 1934년 연회보고에 “희천읍이 만포선의 중요 정거장이 되어 이사하여 들어오는 교인들이 매인 증가한다고 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만포선은 평안남도 순천과 평안북도 만포를 잇는 철도인데 ‘만포선 길손’이라는 오래된 대중가요가 있다.

희천읍감리교회의 주소는 평안북도 희천군 희천면 읍하동 460번지였는데 읍하동은 1952년에 희천읍이 되었다. 희천이 시가 될 때 희천읍은 여러 개의 동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희천읍감리교회가 있었던 곳이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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