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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91) 이원읍(利原邑)교회(함남)



  이원읍(利原邑)교회
  -  그리어슨(具禮善) 선교사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



이원(북한식 표기는 ‘리원’)은 동해를 끼고 있는 곳인데 북쪽에는 단천시가 있고, 남쪽에는 북청군이 있다.
이원은 고구려, 신라, 발해, 이렇게 여러 나라에 속했었고, 여진에 이어 원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고려말기부터 다시 우리의 땅이 되었다.
이원은 평야도 많고 산림도 많은 곳이다.
현재 이원에는 수산사업소, 철광, 식료품공장, 공예품공장, 종이공장 등이 있다.
이원은 북한에서 살기 좋은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는 지역이다.
이원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의 진흥왕이 나라의 경계를 정하고 세운 비인데, 서울 북한산, 창녕, 그리고 북한 함주의 황초령, 마지막 하나는 이원의 마운령(摩雲嶺)에 있다.
이원의 마운령비는 흥남에 있는 함흥본궁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설립자이고 경동교회를 오래 담임했었던 강원룡(姜元龍)목사가 이원 출신이다.

                  ▣ 그리어슨 선교사, 귀국할 때 천 여 명의 환송객이 ▣

이원읍교회는 1909년에 세워졌다.
캐나다 선교사인 그리어슨(R.G. Grierson: 具禮善)목사가 전도해서 이 지역 사람들이 믿고 교회를 세웠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1899년에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원산에서 일했고, 그 다음에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에 근거를 두고 활동했으며 함흥 선교를 개척했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목사이면서 의사였고, 음악가였고 스포츠맨이었다.
또 교육가이고 민족운동 후원가이기도 했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제동(濟東)병원을 세웠고, 보신(普信)여학교를 세웠다.
함경북도 지방의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그리어스 선교사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들어왔고, 그의 지도를 받았다.
구한국 군인 출신인 이동휘(李東輝)는 나중에는 유명한 사회주의자가 되었지만 초기에는 대단한 정열을 가지고 전도활동을 하면서 특히 학교를 많이 세운 사람인데 이동휘도 그리어스 선교사의 영향으로 신자가 되었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중국대륙 동북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많은 수고를 했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성격이 대단히 급했던 것 같다.  
1930년 1월초의 신문을 보면 그리어스 선교사가 학교직원이었던 사람을 구타해서 말썽이 크게 난 일이 자세하게 보도되어 있다.

그리어슨 선교사가 정년을 맞이하여 1934년 5월에 한국을 떠날 때는 천여 명이 성진역에 나와 전송을 했다는 기사도 있다.

                 ▣ 세 교회가 합하여 당회를 조직하다 ▣

이원읍교회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독립해서 당회를 조직하지 못하고 1918년에 송당(松堂)교회, 또 장문(場門)교회와 합해 김재관(金載寬)이라는 분을 장로로 세우고 당회를 조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송당교화는 송단(松端)교회의 잘못 적은 것이 확실한데, 이 교회는 세워진 유래가 재미 있다.
송단리에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재산이 있었는데 관리 문제로 말썽이 일어났다.
그 때 ‘기독교인들은 공정하다고 하더라. 기독교인에게 재산관리를 맡기자’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그 때 앞에서 말한 이동휘가 송단리에 와서 전도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기독교를 믿어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것이 바로 송단교회이고 그 송단교회에서 분립한 교회가 장문교회이다.

송단리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인데 북한이 자랑하는 휴양소가 세워져 있다.

1922년 7월에 발간된 「기독신보」를 보면 이원읍교회에서 부흥회를 해서 건축헌금이 많이 나왔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 함중노회 ▣

이원읍교회의 초기 담임자들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1926년부터 정기헌(鄭耆憲) 목사가 담임해서 해방 전까지 목회했다.
정기헌 목사는 평안도에서 태어나서 일찍부터 전도인 생활을 했고,  1921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14회) 함경북도 지역에서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들과 함께 여러 교회를 돌보다가 1926년에 이원읍교회를 담임했다.
정 목사는 해방후에 월남, 안양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이원읍교회는 함중노회에 속해 있었다.
함중노회는 1925년에 함북노회에서 분립한 노회이다.
이름 그대로 함경도의 중간부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함경북도의 성진(城津)․명천(明川)․길주(吉州), 함경남도의 이원(利原)․단천(端川)․삼수(三水)․갑산(甲山)의 장로교회들을 관할했다.  
그  중심지는 성진이었다.
이원읍교회를 담임했던 정기헌 목사는 1935년과 1936년에 두 차례 함중노회 노회장을 지냈다.

함중노회 지역에는 산간오지가 많았다.
삼수나 갑산은 북한의 대표적인 산간이다.
함중노회에서는 ‘사역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이런 곳에 교회를 세우기에 힘썼다.

이원읍교회의 주소는 함남 이원군 이원읍 남문리였다.  
남문리는 읍을 둘러싼 성의 남문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이곳이 이원군 구읍리(舊邑里)가 되어 있다.
구읍리는 ‘예전에 읍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이다.
구읍리는 이원군의 중동부 지역이고 평라선(平羅線)이 통과하고 있다.
평라선은 평양과 나진을 연결하는 철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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