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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75) 건산리(乾山里)교회(평남 중화군 소재)




                                                    건산리교회
                                             -목수가 건립한 교회 -


건산리교회는 평안남도 중화군에 있었다.
중화군은 얼마 전까지 평양에 속해 있다가 황해북도로 이관되었다.

      
                         ▣ 남녀교인석 사이에 구분이 없었던 교회 ▣

건산리교회는 1906년 11월 12일에  중화읍교회에서 분립되었다.
건산리교회가 있었던 마을을 건산교리(乾山橋里)라고도 했기 때문에 이 교회는 건산교리교회라고도 한다.  

중화군 하도면 금수정리(金水井里)에  한영희(韓永禧)라는 목수가 있었다.
한영희 목수가 황해도 황주 용소동(龍沼洞)교회를 짓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한 번은 예배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다.  
예수를 믿게 된 한영희는 중화로 돌아와 중화읍교회에 출석하면서 열심히 전도했다.
믿는 이들이 50여 명 가까이 생겼는데 이들이 건산교리에 살고 있는 이석건(李錫健)이라는 분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건산리교회는 이렇게 해서 설립되었다.

교회가 세워진 다음 해에 집주인 이석건의 동생이 술을 먹고 예배를 방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은 더 이상 그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초가삼간을 사서 예배를 드렸다
.교인이 금방 60명이 넘어서, 초가삼간이 좁아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교인들은 힘써 헌금을 하여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한영희 씨는 원래 목수이어서 이 일에  앞장섰다.
그는, 예수님도 목수이셨다는 사실을 알고 더 힘을 냈는지도 모른다.  
교회당을 짓고 나니까 교인이 금방 130명으로 늘어났다.

한영희 장로가 지은 교회는 약 400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였고, 남자 교인과 여자 교인 사이에 벽(휘장)이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교회를 지을 때 기억자로 지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
기억자가 아닌 경우에는 남자 교인석과 여자 교인석 사이에 휘장을 쳤는데 건산리교회는 그런 것을 깨뜨린 것이다.  

        
                     ▣ 건산리교회의 초기 교인들 ▣


건산리 뿐만 아니라 인근의 동산, 수구리, 서교리, 애간리, 긴수물, 금수정리, 석박리. 당곡리에서도 예배를 드리러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목사가 계시지 않아서 장로 두 분이 예배를 인도했다고 하는데  이 두 분 장로는한영희 장로와   최상호(崔相鎬) 장로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 씨 성을 가진 분을 조사로 임명했는데 전 씨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교인들 중에 장신대 명예교수인 주선애(朱善愛) 권사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저 ‘변 씨’라고만 알려져 있다.

한영희 씨는 건산리교회의 영수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장로가 되었다.
건산리교회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한영희 장로는 아들 한도진과 딸 한도신을 두었다.
아들 한도진도 장로가 되었는데 그의 여섯 자녀 중 한춘삼이 장로가 되었다.
한춘삼 장로는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은 장로이고 두 분은 목사이다.
한춘삼 장로의 딸인 한정애 목사는 협성대학교 신학과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영애 교수의 부군인 말테 리노(Malte Rhino: 이말테, 독일인) 교수는 루터신학대학에서 예배학을 가르치고 있다.


                   ▣ 역대 교역자들 ▣

찰스 클라크(Charles A. Clark: 郭安連),  선교사가 일 년에 두 번 정도 건산리교회를 방문해서 성례전을 집례했다.

1911년에 채정민(蔡廷民) 목사가 부임했다.
채 목사는 이 해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제3회),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중화읍교회, 장산리(長山里)교회. 그리고 건산리교회, 세 교회를 담임했다.

건산리교회는 그 뒤 끊임없이 부흥해서 1915년에는 석박리(石博里)에 기도실을 건축했고, 1916년에는 동산리(東山里)에 역시 기도실을 신축했다.

1939년에 김이숙(金利淑) 목사가 부임했다.
김이숙 목사는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1931년에 졸업한 분이다(제21회).
(이름을 보아 ‘혹시 여자 목사가 아닌가?’ 하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자 목사 제도가 없었다.)


건산리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중화군 당정면(唐井面) 건산리였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중화군 건산리이다.
건산교마을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건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아래 다리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건산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중화군의 동북부로 강남군에 가깝다.
이곳의 북쪽으로 곤양강(昆陽江)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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