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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74)박구리(礡九里)감리교회(평양 소재)




                                           박구리감리교회
                         -광혜여원(여성전용병원)에서 출발한 교회 -


박구리감리교회는 많은 기록에 ‘전구리(磚九里)감리교회’로 잘못 나온다.
벽돌 전(磚)자와 널리덮일 박(礡)자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양의 지명에 대한 북한쪽의 자료들이 ‘박구리’로 되어 있고 해방 직전에 이 교회를 담임했던 고 박대선(朴大善) 목사(연세대 총장 역임)가 남긴 기록에도 박구리교회로 되어 있다.
박구리는 돌을 넓게 가공해서 다듬잇돌을 만들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 박석동이라고 했는데 부근의 대구동, 소구동을 합하면서 ‘구’자를 따와서 박구리가 되었다.


                           ▣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


박구리감리교회는 1906년에 설립되었다.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선교하다가 과로로 순직한 간 홀 선교사의 부인 로제타 홀 선교사(의사)가 평양에 여성병원병원인 광혜여원(廣惠女院)을 세웠다.
그런데 1906년에 화재가 나서 이 광혜여원이 불타 버렸다.
롲제타 홀은 박구리에 전통가옥을 하나 구해서 임시로 병원으로 사용했다.
그 임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박구리감리교회의 시작이었다.
박구리의 자연부락 이름이 ‘구골’이어서 박구리교회는 처음에는 ‘구골교회’라고 했다.

박구리감리교회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한 교회였다.
박구리감리교회는 광혜여원 임시건물의 기도실에서 시작했는데 시작할 때 교인은 25명이었다.
그런데 1912년 감리교 평양지방 감리사의 보고를 보면 주일낮예배에는 150명, 주일저녁예배에는 약 100명이 참석한다고 되어 있다.
그 때 평양지방 감리사는 모리스(C. D. Morris), 한국 이름 모리시(慕理是)선교사였는데 모리스 선교사는 ‘교인들이 일치와 사랑의 위대한 정신으로 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고 새로운 교회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 박구리교회는 낡은 한옥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한옥의 가격은 미화 25불이었다.


                          ▣ 로제타 홀 선교사의 헌신 ▣

박구리교회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로제타 홀은 1890년에 한국에 와서 43년간 한국을 위해 일했다.
평양에 최초의 병원을 세우고, 최초의 여성병원 설립, 시작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 점자개발 등 많은 일을 했다.
그의 자녀들도 한국의 결핵환자들을 위해 일했다.

1913년에 박구리교회는 열여덟 칸 크기의 예배당을 건축했다.
그런데 1915년에는 이 예배당도 좁아서 다시 새 예배당을 짓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이 때 주일낮예배 참석인원은 360명이 넘었다.
1929년 초에「기독신보」라는 신문에 박구리교회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는데, “남대문통 거리를 꿰어지나 이어다리 골목으로 들어간 후 다시 남편으로 뚫린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크지는 않으면서 순조선식으로 지은 집”이라고 했다.
박구리감리교회는 1932년에 예배당을 신축했는데, ‘1938년 감리교재산 목록’을 보면, 박구리감리교회는 쉰일곱 평 규모의 목조기와예배당과 14평 규모의 목사주택, 사정실(使丁室)을 가지고 있었다.


                       ▣ 역대 담임자들 ▣

초기, 1910년대에는 배형식(裵亨湜) 목사가 이 교회를 담임했다.
그 때 배형식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고 전도사였다.
배형식 목사는 뒤에 중국대륙 동북지역과 시베리아에서 정말 많은 수고를 했고, 독립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3․1운동 직전에는 송득후 목사가 박구리감리교회를 담임했는데 송득후 목사는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생활을 했다.

1920년대 초기에는 주기원(周基元) 목사, 중기에는 윤봉진(尹鳳鎭) 목사, 그리고 1928년부터 10년 가까이는 김창림(金昌林)목사가 담임했다.

주기원 목사는 평양 광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신학교 재학 중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때는 그런 제도도 있었다고 한다.
주 목사는 3․1 운동 때 평양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다가 병보석으로 석방이 되었다.
이 무렵에 박구리감리교회를 담임하였고, 신학교도 졸업했다.
1915년에 입학해서 1925년에 제11회로 졸업했으니 11년만에 졸업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병보석을 취소하고 다시 여러 달 감옥생활을 하게 했다.
주기원 목사는 해방 후 월남했다.

주기원 목사 다음에 박구리감리교회를 담임한 윤봉진 목사는 평양을 비롯해서 평안남도 일대 여러 곳에서 목회를 한 분이다.

박구리감리교회를 오래 담임한 김창림 목사는 주기원 목사와 협성신학교 동기동창생이다.

1930년대 후반에는 김진탁(金振鐸) 목사가 박구리감리교회를 담임했는데 김진택 목사는 강서 3․1 운동 주동자 가운데 한 분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감리교회가 친일로 기울자 여기에 항의해서 목사직을 사임하기도 하였다.
김진탁 목사의  딸이 잘 알려진 성악가 김천애 교수이다.

1940년대 초반에는 이피득(李彼得: ‘피득’은 베드로의 한자 표기) 목사가 부임하였다.

그 다음은 앞에서 이름이 나온 박대선 목사가 박구리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박대선 목사는 원래 장로교 집안이었고 그 자신도 장로교 교역자였는데, 감리교 중진 교역자들의 권면을 받고 감리교 목사가 되었다.
그 때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
박 목사는 창광산감리교회를 담임하다가 박구리 교회로 옮겼는데 회고록에서 ‘박구리감리교회는 평양의 중심가, 부촌(富村)에 자리잡은  교회였다’고 말하고 있다.
박대선 목사가 박구리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는 교회가 모든 서류를 일본어로 작성하고, 회의를 할 때도 일본어로 해야 했는데, 박 목사는 일본 유학을 한 일이 있어서 일본어에 능숙했기 때문에 서류 정리 등으로 매우 분주했다고 한다.


                ▣ 교회가 있었던 곳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심가 ▣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인사들이 교회를 통폐합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때 평양의 남산현교회와 박구리교회와 중앙교회와 채관리교회를 통폐합해서  중앙교회로 모이게 했다.
이렇게 해서 박구리교회는 실질적으로는 없어지고 말았다.
해방 후에 박구리교회는 다시 문을 열었는데, 박대선 목사는 서평양교회로 가고 이피득 목사가 다시 부임했다.
이피득 목사는  감리교 서부연회 서기를 맡아 공산정권과 맞서 싸우느라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박구리감리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평양부 박구리 20번지였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평양시 중구역 경림동(敬臨洞)의 평양전신전화국 부근이다.
평양의 중심가로서 대동강을 끼고 있는 곳이다.
박대선 목사가 “박구리는 부촌이었다.”고 했는데 지금도 경림동은  성분이 좋은 특수계층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의 박구리, 죽전리, 진향리, 리향리, 아청리가 합하여 경림리가 되었다가 경림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대동문동으로 분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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