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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66)중화읍(中和邑)교회(평남 중화군 소재)




                                               중화읍(中和邑)교회
                                   -독립협회 회원도 출석하고, 군수도 출석하고-


중화읍교회는 중화군에 있었는데, 중화군은 평양에서 가까운 곳이다.
중화군에 대해서는 중화군에 있었던 사룡리(寺龍里)교회를 소개할 때(35번 참조) 예전에 점심을 “중화”라고 했는데 평양에서 출발해서 점심 먹을 때쯤 닿는 곳이라고 해서 이곳의 이름이 중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1896년에 전국을 열세 도로 나누었는데 이 때. 중화군은 평안남도에 들어갔다.
중화군은 1963년에는 평양시에 편입되었는데 얼마 전에 북한은 평양 안에 들어 있던 중화군을 비롯해서 강남군, 상원군, 승호구역을 황해북도로 이관했다.
평양 시민들에게는 배급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특혜가 주어지는데 재정난으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그 지역의 주민들은 평양시민증을 가지고 있다가 모두 회수당하고 새 공민증을 발급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가운데 강남군은 다시 평양시가 되었다고 한다.


                         ▣ 사무엘 마펫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 ▣

중화읍교회는 1897년 5월 13일에 세워졌다.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중화에 와서 전도했는데 김태로(金泰櫓)라는 분이 믿고 평양 장대현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분이 주위에 열심히 전도해서 한 분, 두 분, 믿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믿는 사람들이 스물세 명이 되었을 때 “평양까지 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 출석하자”고 마음을 모으고 초가삼간을 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장소가 연당동변(蓮塘東邊)이라고 되어 있다.
연당은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인데 아마 연못 동쪽 부분에 교회를 세운 것 같다.

그 다음 해에는 열두 칸짜리 초가를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했는데 얼마 안 있어서 여덟 칸 기와집과 열 칸 초가를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09년에는 반 양옥의 설흔 칸 예배당을 마련했다.
1911년에는 장산동(長山洞)교회와 건산교리(乾山橋里)교회를 합병하였다.


                         ▣ 기복이 심했던 교회 ▣


중화읍교회는 스물세 명으로 시작해서 1911년에는 300명이 출석할 정도로 부흥하는 교회이기는 했지만 기복이 좀 심한 편이었다.

교인 가운데 이준배(李俊培)라는 분이 독립협회의 열심 있는 회원이었는데  독립협회가 강제해산을 당하자 그 회원 백여 명이 일시에 교회에 들어온 일이 있었다.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횡포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초기 교회에는 그런 현상이 있었다.
서양 선교사들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중화군의 군수 신대균(申大均)이라는 분이 교회에 출석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일진회(一進會)라는 친일단체의 횡포가 심했는데 신대균 군수는 그것이 싫어서 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군수가 교회에 출석하니까 따라서 교회에 나오는 유력인사들도 있었다.
중화읍교회에서 학교를 세울 때 신대균 군수는 군청 소유 건물을 사용하게 하는 등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신앙 이외의 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은 오래 가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분들 때문에, 또 배교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 임원 세우는 일들로 교회가 평온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교인수가 줄었다가 다시 회복되고 하였었다.
  

                 ▣ 중화 출신 채정민 목사의 이야기 ▣

초기에는 그라함 리(Graham Lee: 李吉咸) 선교사가 교회를 이끌었다.
그라함 리 선교사는 15년 가까이 중화읍교회를 잘 섬기다가 신병을 얻어 1911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홀드크로프트(J. G. Holdcroft: 許大殿)  선교사가 부임했는데 동시에 채정민(蔡廷民) 목사가 와서 동사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채정민 목사는 중화가 고향이다.
예수를 믿고 고향에 설매동(雪梅洞)교회를 세웠고, 또 인근에 용산리(龍山里)에도 교회를 세웠다.
채정민 목사는 목사가 되기 전에 그리고 그라함 리 선교사의 조사로 일할 때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의 서른 개의 교회를 돌보았다.
그는 1911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3회) 목사 안수를 받고 바로 중화읍교회에 부임했다.

채정민 목사는 1918년에 중화읍교회를 떠난 뒤에 평안도와 황해도 여러 교회에서 목회했는데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채정민 목사와 관련해서 기억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1948년에 우리나라가 건국될 때 처음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주일인 5월 9일에 하려고 했다.
채 목사는 반대운동을 일으켜서 결국 제헌국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월요일인 5월 10일에 실시되었다.


                                              ▣ 박응률 목사 ▣

1918년에 김선환(金善煥) 목사가 부임했는데, 김선환 목사는 3․1 만세운동과 관계되어 옥고를 겪었다.

1940년에 박응률(朴應律) 목사가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박응률 목사는 1929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분이다.(24회).
이 분은 1938년에 평양노회 노회장이었는데 1938년은 신사참배를 가결한 장로교 제27차 총회가 열린 해이다.  
총회가 열리기 전에 평안남도 경찰국장이 평양노회장과 평서노회장과 안주노회장을 불러 “평양노회장은 신사참배 하는 것을 제안하고, 평서노회장은 동의를 하고, 안주노회장은 재청을 하라”고 지시했다.
악역을 나누어 맡긴 것이다.
여기에 따라서 박응률 목사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고 긴급동의를 했다.
한국장로교회의 신사참배 가결은  이렇게 해서 결정되었다.
박응률 목사는 대단한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는데 8․15 해방 뒤에도 평양에서 목회하다가 공산정권에 의해 희생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 공화국 영웅 길영조가 다니던 학교가 있던 곳 ▣

중화읍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읍 초현리였다.
초현리(草峴里)는 “풀이 무성한 고개를 끼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중화군 중화읍이다.
중화읍교회가 있었던 초현리는 “초현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중화읍에는 길영조(吉英祚)중화제1중학교가 있다.
길영조는 북한 공군조종사의 이름인데 1992년에 비행 중 사고로 원산상공에서 추락을 하게 되었는데  탈출하지 않고 기수를 바다쪽으로 돌려 비행기와 함께 순직했다.
북한에서는 길영조를 공화국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칭송하고 있다.
그룰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만들었다.

이 길영조는 중화군에 있는 초현고등중학에 다녔는데 북한당국은 이 학교를 길영조중화제1중학교라고 이름을 바꾸고 학교에 그의 반신상을 세웠다.
이 학교가 있는 곳이 초현리였으니까  이 학교가 나중에 초현리에 있었던 중화읍교회의 위치를 찾는데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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