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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78) 신창(新倉)교회(평북 용천군 소재)




                                                      신창교회
                                        -용천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


신창교회는 평안북도 용천군에 있었는데, 용천군은 교회가 많아서 용천군 하나가 하나의 노회(一郡一老會)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1938년 장로교 주소록을 보면 용천노회에는 모두 57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신창교회는 그 가운데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이다.


                                ▣ 전도에 열심이었던 교회 ▣


신창교회는 1898년에 세워졌다.
같은 해에 용천의 동문밖교회도 세워졌다.
조학룡(趙學龍)이라는 분이 의주의 남산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동리 사람들에게 전도해서 집을 한 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용천의 교회들은 용천의 주민들이 주변의 다른 군들의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살던 동리에 교회를 세웠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동문밖교회는 철산군(鐵山郡) 학암(鶴岩)교회에 출석하던 분들이 세웠다.
용천의 서석(西石)교회와 구봉(鳩鳳) 교회도 역시 철산 학암교회에 출석하던 분들이 세웠다.
의주 남산교회에 출석하던 분들은 용천에 신창교회도 세웠고 덕흥(德興)교회와 양시(楊市)교회도 세웠다.
양시교회는 용천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다.

용천의 교회들은 전도하는 일에 아주 열심이었다.
신창교회는 세워진지 6년 만에 용천군 안에 입암(立岩)교회와 신성(新成)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용천의 교회들은 힘을 합해 ‘용천전도회’를 조직해서 용천군의 산간오지와 창성군(昌城郡)․박천군(博川郡)․구성군(龜城郡)에 전도인, 또는 전도대를 파송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지역 전도에도 열심을 기울였다.
중국 동북지역의 영구(營口)․대련(大連)․해성현(海城縣)․반산현(盤山縣) 등지를 대상으로 전도힌 것이다.
앞에서 용천노회에는 모두 57개의 교회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12개는 용천의 교회들이 중국 동북지역에 세운 교회들이다.

요즘 중국 대련시를 방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대련시 번화가인 사하구(沙河區)의 흥공가(興工街)에 3층 규모의 큰 조선족교회가 서 있는 것을 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 대련조선족기독교회도 용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회이다.

신창교회의 설립자인 조학룡은 집사가 되어 초기에 신창교회를 잘 이끌었다.
그리고 광신(光新)학교를 세워 용천군에서 신교육을 시작했다.
용천군에는 광명학교, 보성학교, 영생학교, 옥성학교, 구세학교 등 스무 개의 기독교 계통 학교가 있었다.


                         ▣ 독립운동가 송병조 목사 ▣


신창교회를 담임자들 가운데 송병조(宋秉祚) 목사는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이 분은 용천에서 태어나서 1914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제7회) 목사안수를 받고 바로 신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송병조 목사는 신창교회를 담임하면서 동시에 용천지역 전도목사로 앞에서 말한 용천지역 교회들의 전도활동을 주관했다.
전도활동과 함께 교육사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족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데도 힘을 썼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송병조 목사는 이에 적극 참여하고 바로 상해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했다.
장로교 총회에서는 송병조 목사를 상해 주재 선교사로 임명했다.
송 목사는 상해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그 이후  임시정부 지도자로서 늘 행동을 같이하면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오래 하였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과 회계감사원장, 요즘 말로 하면 국회의장과 감사원장의 직책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42년에 중경(重慶)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는 임시정부장으로 거행되었다.

송병조 목사님의 아들인 송성찬은 1948년에 영락교회에서 제일 먼저 장로로 임직하였다.
송성찬 장로는 평생을 교육자로 청렴하게 살았고, 한국광복회 부회장을 지냈는데 2010년 12월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창교회의 담임자 가운데 한 분인 차원환(車元煥) 목사도 용천 출신으로 1920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제13회) 목사 안수를 받고 백암(白巖)교회를 거쳐 1924년에 신창교회에 부임했다.
차원환 목사는 일제 강점기 말기까지 신창교회를 담임했는데 해방 후에도 계속 북한에 있다가 6․25 때 소식이 끊어졌다.
일부 기록에는 이 분의 이름이 차원희(車元熙)라고 나온다.

일본 총독부의 “소화 15년(1940년) 종교․사원 기타 관계서류철”에는 차원희 목사는 1940년 7월, 용천노회가 유지재단으로 인가 받을 때 용천노회 부회장이었고, 법인 이사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창교회는 두 필지의 재산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247평이었고, 하나는 460평이었고,  장로 7명, 유년부 163명, 장년부 236명이었는데 세례교인은 17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경의선(평부선)이 통과하는 마을에 있었던 교회 ▣

신창교회의 주소는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楊下面) 신창리 359번지였다.
‘신창’은 ‘새 창고’라는 뜻이다.
신창리는 조선조 말기에  새로 생긴 양곡 창고가 있는 마을이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지금 평안북도 룡천군 신암리(新巖里)가 되어 있다.
신암리는 신창리와 입암리를 병합해서  만든 리인데 신창리에서 ‘신’을 따고, 입암리에서 ‘암’을 따서 신암리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신창리라는 이름은 지금도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예전의 신창리, 지금 신암리는 룡천읍 북쪽 십 리쯤 되는 곳인데 신의주로 가는 큰 도로가 있고 경의선(북한의 이름으로는 평부선)도 통과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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