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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057)서문밖〔西門外〕교회(평양)




                                             서문밖교회
                 -한국교회가 겪은 격랑의 역사 그 한 가운데 있었던 교회-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여러 교파가 그 요구에 순응했다.
장로교는 강하게 버티었는데 결국은 장로교도 1938년에 열린 제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했다.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27차 총회가 열린 장소가 바로 평양 서문밖교회이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사들은 사전에 일본 경찰에 의해 미리 구금된 가운데 총회가 열렸는데 그 때 회의장 분위기는 아주 삼엄했다.
사복경찰이 교회당 안팎을 포위하고 강대상 아래에는 평안남도 경찰부장을 비롯해서 경찰간부 수십 명이 긴 칼을 차고 앉아있고 총대 좌우에는 경찰관 두 명씩이 앉아 있고 무술경관 백여 명이 교회당 안에 포진해 있는 가운데 신사참배가 가결된 것이다.


                       ▣ 중요한 모임이 많이 열렸던 교회 ▣


서문밖교회는 중요한 교회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장로교 총회도 이 교회에서 여러 번 모였고, 여러 가지 중요한 모임들이 이 교회에서 많이 열렸다.

장로교는 1934년에 열린 제23차 총회를 “희년 총회”라고 불렀다.
복음을 받아들인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 희년총회가 열린 장소가 바로 평양 서문밖교회이다.

해방 직후인 1946년 2월에는 평양노회 면려청년대회가 해방 후 최초로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열렸다.

1950년 3월, 공산정권의 박해가 점점 심해질 무렵에 평양 서문밖교회는 다시 명예롭지 못한 일을 결의하는 장소로 쓰였다.
공산정권에 협력하는 장로교 교역자들이 서문밖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이 모임을 장로교 33차 총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든 교회가 북한공산정권에 협력하는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할 것을 결의하고, 기독교도련맹에 가입하지 않는 교역자는 파직시키기로 결의했다.
12년 전에 열렸던 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사는 교회에서 추방하기로 결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6ㆍ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의 교인들은 8월 5일 서문밖교회에 모여 북한이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국군과 UN군이 계속 진격해서 평양을 탈환하자 남한교회의 사절단이 평양에 들어갔고 일부 미국 선교사들도 함께 들어갔다.
그들이 평양에 들어가보니 북한공산정권은 선교사들의 주택을 중요한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공산정권의 본부는 번하이슬(Bernheisel: 片夏辥) 선교사의 집과 그 집 앞에 지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고, 김일성은 베스트(Best: 裵貴禮)) 여자 선교사의 사택에서 살았는데 지하에 대피호를 파놓았다.

이들은 10월 29일에 역시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도 많았는데 이 예배에서 한경직 목사가 이사야서 60장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했다.


               ▣ 김선두 목사, 순교자 정일선 목사, 부흥사 임종순 목사…. ▣


평양서문밖교회는 장대현교회에서 분립해서 설립되었는데 먼저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살던 집에서 모임을 갖다가 1909년 3월 14일에 공식으로 출발했다.
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할 때  세례교인이 이미 408명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무엘 마펫 선교사와  그라함 리 선교사가 평양 서문밖교회를 이끌었다.
“평양 선교의 개척자” “한국 장로교의 기초를 놓은 분” 이런 말을 듣고 있는 사무엘 마펫, (한국 이름 馬布三悅)선교사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라함 리(한국 이름 李吉咸) 선교사 역시 평양복음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다.
이 분은 건축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평양의 교회당들을 짓는 일, 선교사 주택을 짓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13년에 김선두(金善斗) 목사가 마펫 선교사와 함께 동사목사로 일했다.
김선두 목사는  숭실전문 졸업생이고, 숭실중학교 교사를 지낸 분인데  1916년부터 서문밖교회를 전담하게 되었다.
김선두 목사는 평양 서문밖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평양노회장을 지냈고 장로교 총회장도 지냈다.
김 목사는 평양 3ㆍ1 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 이 일로 구속되었고,  그가 구속되어 있을 때는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1930년대에는 중국에 가서 목회도 하였고 봉천신학원 교수생활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서 또 감옥생활을 하였다.

1922년부터 황해도 출신의 정일선(丁一善) 목사가 김선두 목사와 동사목사로 일했다.
1923년에 김선두 목사와 정일선 목사가 함께 사임했고 교회의 임원들이 모두 사임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재정곤란과 제직원 불화”라고 기록되어 있다.
평양 서문밖교회는 그 무렵에 2층 벽돌 예배당을 지어 1층은 주일학교 교실로, 2층은 예배실로 사용했다.
교회당을 지으면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흔한데 혹시 그 때문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선두 목사는 평양의 다른 교회로 가고, 정일선 목사는 황해도 안악읍교회에 부임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일본 당국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정일선 목사는 교회를 떠나 산에 들어가 초가삼간을 마련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8ㆍ15 해방 뒤에 다시 평양으로 와서 산정현교회를 담임했다.  
정 목사는 공산당의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교회를 이끌어나가다가 6ㆍ25 직전에 체포당했고, 북한군이 평양에서 후퇴할 때 순교했다.

김선두 목사와 정일선 목사의 뒤를 이어서는 김영준(金永俊) 목사가 부임했다.

1929년에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인 임종순(林鍾純) 목사가 평양 서문밖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임종순 목사가 평양 서문밖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예배 참석자 수가 3천 명 안팎이었다.


평양 서문밖교회를 통해서 세워진 교회도 여럿이고, 학교도 여럿이다.
학교는 숭덕(崇德)학교와 숭현(崇賢)학교를 세웠고, 유치원도 세웠고 야학도 운영했다.
교회는 서장대(西將臺)교회ㆍ대타령(大駝嶺)교회ㆍ현암리(玄岩里)교회ㆍ남신가리(南新街里)교회ㆍ북봉수리(北烽岫里)교회ㆍ주촌(朱村)교회 등이 서문밖교회를 통해서 세워졌다.



                                 ▣ 만수대예술극장이 있는 곳 ▣


평양 서문밖교회의 주소는  평양부 하수구리(下水口里) 109호였다.
하수구리라는 이름은 빗물이 흘러들어가는 하수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지금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이 서 있다.
만수대예술극장은 북한을 소개하는 화보나 TV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건물인데요, 규모가 큰 분수공원을 끼고 있는 극장이다.
앞으로 만수대예술극장 모습을 보면 ‘아, 저기가 평양서문밖교회가 있었던 자리로구나!’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곳의 지금 행정구역은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西門洞)이다.
평양의 중심부인데 서문동은 이름 그대로 “서문이 있었던 동”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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