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몹시 매섭던 1977년 3월에 저는, 대학교에서 2년에 걸친 R.O.T.C. 훈련을 받은 끝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광주 상무대 육군보병학교에 입소했습니다. 동복 유격장에서의 고달픈 유격훈련을 끝으로 16주간의 초급장교 훈련과정이 끝나갈 무렵, 저는 느닷없이 공수특전단 차출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로 육군 장교가 됐나보다' 하던 차에, 장교 계급장을 떼버리고 특전사령부에서 허리춤에 독수리 번호표 하나 달랑 붙인 채 10주 동안의 숨가쁜 공수훈련과 특수전술 훈련을 또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숨이 꽉 막히는 그 혹독한 훈련과정을 짧은 시간에 아둔한 몇 마디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공수훈련과 특수전술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자대 배치를 받아 38선 너머 최전방에 주둔 중인 우리 여단으로 들어가던 날, 여단본부 위병소 옆의 거대한 돌비에 새겨진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젊은 가슴을 천만 근으로 짓눌러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구호 아래쪽에는 ‘Nothing is impossible’ 곧 ‘불가능은 없다’는 영문(英文) 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자대 생활......, 태권도 집체 훈련에 뒤이은 중대훈련, 지역대훈련과 천리행군 등의 훈련을 받는 사이, 강원도 태백산 비탈에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여 부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전방 여단에 배속되어 자대 생활을 하는 과정 역시, 우리들 스스로 우리 특전단을 일컬어 ‘국군 헬스클럽’이라고 이름할 정도로, 이미 충분히 단련된 몸을 또 다시 무쇠로 다듬는 여러 가지 훈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훈련과정 중에 1년에 몇 차례씩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실제 낙하훈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여단 안에 낙하경험 수백 회를 웃도는 최정예요원들도 많이 있었지만, 낙하산을 메고 비행장 활주로 갓길에 서서 군용 수송기를 기다릴 때의 표정은 늘 무겁기만 했습니다. 때로 한껏 여유를 부린답시고 억지로 웃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제가 보기에는 거의 쓴웃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낙하훈련을 할 때마다 우리들은 늘 “T.O.T.는 생명이다”라는 구호를 암송했습니다. T.O.T.는, ‘Time on target’ 곧 ‘목표상공 도달시간’을 말합니다. 특전부대의 특성상, 유사시 적 지역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적 지역에 은밀히 침투하기 위해 낙하산을 이용하는데, 약속된 시간에 목표상공에 도착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낙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럴 경우, 적 지역에 미리 침투해 있는 아군 길잡이들을 제 때 만나지 못함으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 자체가 몹시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T.O.T.를 생명처럼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수특전단의 낙하훈련 못지 않게, 우리네 인생에도 ‘길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길을 아는 것, 그 길을 안내해 줄 유능한 길잡이를 제 때 만나는 것이 죽고 사는 것을 판가름하는 치명적인 것임을, 몹시 힘겨운 군대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지금, 당신이 걷는 ‘길’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신다면, 그 길을 인도해 줄 당신 인생의 영원한 길잡이는 혹시 만나셨습니까? (2004. 11. 8.)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11. 1.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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