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달로 온 세계가 말 그대로 ‘지구촌’이 된 것을 날마다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홈페이지나 전자메일 주소만 알면 머나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도 아주 손쉽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 안팎의 일뿐만 아니라 미국대통령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거의 실시간으로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이 인터넷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동전화 또한 많이 퍼져 있어서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다 이동전화에 매달려 살며 틈만 나면 문자메시지와 게임에 파묻혀 지냅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과정의 애절함은 몹시 거추장스런 군더더기 절차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몰래 어쩌다 마음에 사모하는 이가 생기면, 그를 향한 내 마음을 차마 얼굴을 마주 대하고는 전할 수 없을 때, 밤새 정성껏 만든 편지나 엽서로 안타까운 속내를 조심스럽게 펼치던 시절이 이제 다시 올 수는 없나봅니다. 문구점에 가서, 사모하는 이에게 보낼 편지지나 필기구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편지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내내 고민하는 사이에 나도 몰래 사랑은 깊어만 가고, 밤새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온갖 몸살을 한 끝에 만들어진 한 통의 편지를 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 가뜩이나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주소를 쓰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서서 숱하게 그 우체통을 되돌아보고, 행여나 답장이 올까 맘졸이며 날이 날마다 우체부 아저씨가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 끝에 뛸 듯이 환호하거나 몹시 낙담하던 시절이 우리들에게 분명 있긴 있었습니다. 한석규 전도연 씨가 주연한 영화 ‘접속’에서도 확인되듯이 사람과 사람의 정은 접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접촉’ 곧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현대인들이 어느 웹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한 다음 기다리는 평균 시간이 7초라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7초만 지나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현대인들이라는 사실 앞에 몹시 서글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한 때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계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도 어쩌면 이렇듯 몹시 조급해진 사회 분위기 탓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만에 갔을 때, 길을 잘 몰라 차를 몰고 그만 일방통행로로 들어섰는데, 순식간에 길이 꽉 막혀 수많은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그 분의 차가 뒷걸음질로 그 길에서 다시 빠져 나올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을 보면서 몹시 기가 질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 같았으면 과연 어땠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원격 제어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으로 접어든 결과, 접속 횟수만 늘고 사람의 가슴과 가슴이 접촉하는 일은 현저히 적어져서, ‘7초의 벽’을 넘어 차분히 ‘기다려주는 미덕’의 아름다움을 너무 허망하게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4. 10. 25.)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10. 25.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