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의 꿈은 전투기 조종사(pilot)였습니다. 푸른 하늘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하얀 비행운을 내뿜으며 반듯하게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공군 영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보았는데, 공수특전단에서 낙하산을 타며 군 복무를 한 뒤로는 공수단원들이 등장하는 영화까지 즐겨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런 제 눈에, 지난 여름 인터넷에 올라온 작은 기사 하나가 유난히 깊은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2004년 8월 27일 낮 12시 30분쯤, 경기도 고양시 장항나들목 부근 한강 둔치에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한국항공대학교의 황명신 교수(52세)와 은희봉 교수(49세)가 세상을 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2인승 경비행기 ‘보라호’의 성능을 점검하기 위한 시험비행을 하다가 그만 순직한 것입니다. 두 교수는 10년 가까이 팀 동료로서 한국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해온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비행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이들은 많을 때는 1주일에 3-4회씩 함께 시험비행을 했습니다. 매우 꼼꼼한 성격의 황 교수와 호탕한 성격의 은 교수는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지녔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호흡이 잘 맞았다 합니다. 안정적인 항공사 기장 직을 집어던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길에 뛰어든 은 교수는 전투기 조종사와 일반여객기 기장 경력을 지닌 특급 조종사였습니다. 황 교수는 항공기계공학자로서 비행기 제작과 부품 점검만 하면 되는데도, 은 교수와 더불어 위험하기 그지없는 시험비행을 늘 같이 했습니다.
두 교수의 가족들과 동료 교수 그리고 제자들은 한결같이 두 사람을 ‘하늘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들’로 기억합니다. 은 교수는 조종 교육을 시킬 때마다 ‘기술’보다는 항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황 교수는 평소 기름때 묻은 주머니 많이 달린 건빵바지를 즐겨 입었습니다. 몹시 열악한 연구여건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고, 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시험비행을 몸소 감당하다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바쳐버린 것입니다. 항공 전문가들은 이 분들이 사라짐으로써 이 분야에 축적된 많은 전문지식이 함께 사라지고, 그 뒤를 이을 인재가 없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합니다.
사고가 난 뒤 한 달 남짓 시간이 흘렀지만, 하늘을 무척 사랑했던 고인의 유품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한 부인들의 입에서 “올 가을 결혼기념일에는 함께 여행을 꼭 가기로 약속했다”는 가슴 아픈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들이 자기 가정과 삶을 희생시켜가며 내내 연구와 개발에만 몰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료교수들은 이 두 교수를 일컬어 한결같이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갔던 열혈남아”라고 평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시키며,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목숨 걸고 묵묵히 갔던 수많은 열혈남아들 덕분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유난히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한가위를 맞을 이 땅 모든 열혈남아들의 유족에게 우리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4. 9. 27.)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9. 27.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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