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안행지구 정혜사 앞에 세워진 저희 전주열린문교회 새 교회당 바로 뒤에서부터 완산칠봉 산자락이 시작되기 때문에, 저희 교회당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전원교회 분위기가 물씬 넘쳐서 마치 무슨 수련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듭니다. 완산칠봉으로 이루어진 완산공원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저는 거의 매일 새벽기도회와 교역자회의가 끝난 다음 완산칠봉 팔각정을 넘어 칠성사 앞길로 이어지는 약 50분 정도의 등산과 산책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어쩌다 아침 이른 시간에 날이 궂거나 급히 처리할 일이 많아 등산을 못한 날은, 저녁 시간에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중저수지에 나가 좀 빠른 걸음으로 저수지 주변 도로를 한 시간 남짓 걷습니다. 갓바위마을(冠岩里) 너머 새로 난 동부우회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왜망실 입구까지 가보거나, 아니면 신동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게 보통인데, 어떤 때는 갓바위마을 앞에 있는 모정에 나와 한가로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 앉아 세상살이의 잔잔한 이야기를 잠시 훔쳐 듣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해질 무렵에 아중저수지 주변도로를 걷다가, 갓바위마을 약 150미터쯤 못 미친 곳 포장도로변에 있는 어느 누군가의 무덤에 눈길이 갔습니다. 평소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정성껏 준비된 야생화 꽃다발이 무덤 앞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것을 자주 보아왔던 터라, 그 날도 저도 모르게 그 무덤 쪽으로 눈길이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 특이한 것은 누군가가 이 무덤 앞에 끊임없이 새로운 꽃다발을 갖다 놓는다는 점입니다. 처음 이 무덤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았을 때는 바로 그 무렵에 고인의 기일이 있는가 보다 했습니다만, 철이 바뀌어도 변함 없이 새로운 꽃다발이 놓이는 것을 보며 저도 몰래 묘한 호기심이 생기게 된 까닭에, 길을 걸으며 무덤에 누운 고인에 대해 저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한동안,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그러는 것이려니 짐작만 했는데, 며칠 전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어찌어찌 무덤 가까이 올라서서 옆에 새겨진 작은 비석 뒷면에 새겨진 고인의 기일을 확인하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뜬 지 햇수로 7년이나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인과 그 가족들, 혹은 고인과 지인들 사이의 간곡한 사연이나 아기자기한 삶의 곡절을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세월이 가도 빛이 바래지 않는 그 분들 사이의 깊은 정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에 홍정길 목사님(남북나눔운동본부 사무총장, 남서울은혜교회 담임)과 함께 남북나눔운동 대북지원사업 확인 차 며칠동안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북녘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가요 중에 ‘심장에 남은 사람’이라는 곡이 있어 몇 차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심장에 남은 사람’이 그 누구든 간에, 사람이 사람을 무참히 해치고 죽이는 일이 너무 흔한 이 험한 세상, 세상을 떠난 뒤, 남아있는 이들의 가슴에 무덤 앞 한 묶음 야생화 꽃다발 같은 절절한 그리움으로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좀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004. 9. 13.)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9. 13.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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