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만에 올림픽의 본고장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던 ‘2004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세월 따라 사라지는 영웅들의 그림자 뒤로 새아침 햇살이 돋듯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많았는데, 참 안타깝게도, 없었으면 좋았을 상식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 2004 아테네 올림픽은 두고두고 스포츠 애호가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몸의 건강과 정신 수련을 위해 하는 것이 운동인데, 너나없이 순간순간 뒤바뀌는 메달의 색깔에만 온 정신을 쏟는 바람에 경기장마다 스포츠 엘리트들의 눈부신 연기(?)만 있을 뿐 운동 본래의 목적과 정신은 온데간데없게 된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실용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영향 탓인지 지나치게 결과만을 중시하는 흐름이 완전히 뿌리내린 듯하여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의 동기나 과정은 철저하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흐름은 올림픽 경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서 그 과정이야 어떻든 금빛 메달만 목에 걸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꿩을 잡았어도 매가 아닌 것은 매가 아님에도 오직 그 결과만을 보고 매 아닌 것을 매라고 부르는 현실에서 성철 스님 같은 분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눈부시게 발달한 정보통신 매체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머나먼 아테네에 있는 경기장의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모든 경기 내용과 심판들의 엉성한 판정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체조 개인 종합 부문의 양태영 선수가 1등을 하고서도 동메달을 딴 것도 알고, 비록 비인기종목이지만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덴마크 대표팀과의 결승전에서 스포츠사상 전무후무한 2차 연장전까지 정말 극적인 동점상황을 연출하고 최종 승부던지기에서 아깝게 패해 은메달을 차지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은빛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침내 어느 스포츠 전문기자는 ‘금빛 은메달’이라는 표현으로 그 멋진 경기의 극적인 측면을 실감나게 부각시켰습니다. 또한, 관중의 방해로 우승을 놓치고 남자 마라톤 동메달을 수상한 브라질의 리마 선수가 1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은 아테네 올림픽이었지만, 이 대회는 우리 사회에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대회였다고 봅니다. ‘금빛 은메달’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메달 색깔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 메달 색깔로 상징되는 어떤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평범하고도 소중한 진리를 깨우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왜곡된 결과지상주의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메달의 빛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묵묵히 정직하게 땀흘리는 ‘과정’이고, 과정이 아름다워야 그 결과 또한 진정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4. 9. 6.)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9. 6.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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