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올림픽이 아마추어 정신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선수들의 ‘기량’보다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리를 추구하는 스포츠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 ‘sportsmanship’이라는 낱말에 붙어 있는 접미사 -ship은, ‘창조하다’, ‘만든다’는 뜻의 ‘scieppan’에서 파생된 말로서 어떤 일의 ‘질’이나 ‘상태’를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스포츠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바탕에 흐르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태권도 유도 검도 같은 운동은 그 이름에 ‘재주 술(術)’자 대신 ‘길 도(道)’자를 붙입니다. 세계적인 권위의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인 태권도를, ‘수련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행동철학’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든 운동의 뿌리는 인간다운 정신과 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에 이긴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 경기 결과 속에서 육체의 한계를 정직하게 뛰어넘는 차원 높은 인간 정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2004 아테네 올림픽은 ‘오심(誤審)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추하게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아마추어의 관점에도 까마득 못 미치는 저질 심판들의 악의에 찬 오심으로, 4년 동안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일생을 걸고 그늘진 외길을 힘겹게 걸어온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심어 주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영웅 마라도나 선수가 자신의 핸들링 어시스트에 의한 득점을 함으로써 세계적인 축구 잔치가 추하게 일그러진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눈부신 할리우드 액션의 미국대표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도둑맞은 김동성 선수로도 모자랐는지,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체조의 간판인 양태영 선수가 심판들의 속보이는 오심으로 미국의 폴 햄에게 금메달을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올림픽 축구 본선 8강진출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말리의 공격수 은디예바 역시 자신의 핸들링 어시스트로 전반 7분만에 첫 골을 얻어냈습니다. 심판을 눈속임한 반칙으로 골을 얻고도 희희낙락하며 천연덕스럽게 골 뒤풀이를 한 마라도나와 은디예바 선수, 판정시비가 일자, “착지실수로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동메달이라도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던 폴 햄이 금메달을 걸고 귀국한 후에는 완전히 말을 바꾸어 “심판이 제대로 채점했다면 양태영은 4등을 했을 것”이라는 헛소리로, 자기 양심의 외침을 애써 억누르며, 수준 이하의 심판들에 의해 우승자가 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에서 세계 최정상급 선수다운 ‘구도자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심을 재확인한 국제체조연맹(FIG) 브루노 그란디 회장의 편지를 근거로 한국선수단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여 금메달을 되찾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소식에 몹시 우울해 집니다. 평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스포츠는 땀 흘린 만큼의 대가가 분명히 주어지는 가장 정직한 영역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오심의 덕을 본 선수 자신의 정직한 양심선언으로 오심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량에 걸맞은 위대한 정신과 철학을 갖춘 진정한 스포츠 영웅을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는지요. (2004. 8. 30.)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8. 30.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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