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수학여행을 포기해야 했던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가슴 아픈 말 한 마디가 퍽 오랫동안 제 가슴에 가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수업이 다 끝난 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두 불러서, 몹시 크고 넓은 학교 건물 구석구석으로 끌고 다니며 일주일 남짓 힘들게 청소를 시켰습니다. 기나긴 복도를 걸레질하며 기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어린것들을 향해, “너희 같은 놈들은 청소나 해야 한다”며 가뜩이나 쓰린 가슴에 대못을 박고 또 박았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왜 퇴근도 하지 않고 날마다 우리들을 모아 놓고 교내 구석구석을 청소시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질고 독한 말 한 마디가 호된 매질보다 훨씬 더 쓰리고 아프다는 것을 그 때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어쩌다 당한 매질은 대개 세월 속에 거의 다 잊혀지고 기억조차 감감하지만, 가슴에 못을 박은 칼날 같은 말 한 마디는 평생 잊혀지지 않고 무덤까지 따라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예수님을 믿어, 몹시 오랜 세월 제 가슴 속 분노의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선생님을 용서하기까지 아주 긴 고통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심코 내뱉은 아픈 말 한 마디로 큰 상처를 입은 저는, 목회자가 되기 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국어 교사(강사)로 일한 10여 년 동안, 해가 바뀌고 학기가 바뀌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각 학급에 혹시 지체장애 학생이 있는지를 제일 먼저 살폈습니다. 강의를 하다보면 때로 사람의 몸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체장애학생이 있는 교실에서만은 인체를 빗대어 설명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말 한 마디로 상처를 입히고 상처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이들은 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까이 있는 이들 사이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말 한 마디로 상처받는 일이 많기에, 신약성경 야고보서에서는 사람의 작은 혀를, 큰배를 움직이는 작은 키나, 큰 숲을 순식간에 불살라버릴 수 있는 작은 불씨로 참 적절하게 비유했습니다. 혀를 통해 나오는 한 마디 말의 무서운 파괴력을 성경기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말 한 마디의 위력은 이렇듯 파괴적인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를 향한 사랑과 섬김에서 우러나는 따스한 말 한 마디는 때로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도 살릴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개척교회 목회자의 길을 무릎으로 걸으며 밤 잠 못 이루며 지쳐가던 어느 날, “당신이 하는 일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아내의 따스한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제 영혼 깊이 박히는 순간, 무서운 영적 침체의 깊은 늪에서 단번에 빠져 나와 다시 앞을 향해 내달릴 큰 힘과 용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힘든 순간마다, 아내를 통해 주신 우리 하나님의 그 위로를 떠올리며 새 힘을 얻곤 합니다.
몹시 어둡고 힘든 세상, 열심히 섬기고 사랑하라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두신 소중한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로 생명을 살리고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아름다운 삶을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2004. 8. 23.)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8. 23.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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