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에 열린 제 11 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여 일제 식민치하의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준 손기정 선수. 하지만 손기정 선수와 함께 출전하여 3위에 입상한 남승용 선수(1912～2001)에게는 생전에 늘 ‘비운의 마라토너’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붙어 다녔습니다.
1912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달리기에 재능을 보였던 남승용 선수는 서울로 올라와 서울협성실업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일본의 아사부[麻布] 상업학교를 거쳐 메이지[明治]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남승용 선수는, 1932년 10월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전조선육상경기대회 5,000m와 1만m 부문에서 우승한 다음, 그 해 전(全)일본 마라톤 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고, 1933년에 개최된 극동선수권대회와 1934년 일본건국기념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했으며, 그 해 열린 조일 대항경기 5,000m에서 다시 우승을 거두었고, 1935년 메이지대학 2학년 때 참가한 일본건국기념 마라톤 대회에서는 경기 도중 자동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남승용 선수는, 1936년 5월 올림픽 대회 파견 마라톤 선수 최종 선발전에서 1위를 하여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선발전에서 2등을 한 손기정 선수와 함께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여, 손기정은 2시간 19분 19초의 기록으로 1위, 남승용은 그보다 12분 24초 늦은 기록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8,15해방 후 1947년 4월에 개최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손기정이 감독을 맡고 서른 여섯 살의 남승용이 코치 겸 선수로서 서윤복과 함께 출전했는데, 서윤복이 우승할 때 남승용은 2시간 40분 10초의 기록으로 10위를 차지했습니다.
남승용 선수는 손기정 선수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동포들에게 마라톤을 통해 한없는 긍지와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만, 올림픽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가 평생 영광과 명예의 빛 속에 있을 때 3위에 머문 남승용 선수는 언제나 그 뒷전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남승용 선수는 1950년대 전남대학교 체육과 교수로 일하는 동안 우리나라 마라톤 진흥에 기여한 공이 커 197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손기정 서윤복 선수에 결코 뒤지지 않는 뛰어난 실력이 있었으면서도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속 시원히 1등을 하지 못했다하여 올림픽 3등의 남승용 선수에게 ‘비운의 마라토너’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붙었을 텐데, 이렇듯 여기저기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일등지상주의’의 어두운 그늘이 느껴질 때마다 몹시 안타깝습니다. 어떤 시합이든 아주 작은 마을에서 3등하기도 쉽지 않은데 올림픽 같은 세계규모의 대회에서 빛나는 3위 입상을 하고도 ‘비운의 마라토너’라는 가슴 아픈 딱지를 평생 달고 지내야하는 한심한 곳은 ‘일등지상주의’, ‘금메달제일주의’에 사로잡힌 우리나라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꼴찌 없는 1등은 없는 법,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내달린 꼴찌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주는 아름답고 살맛 나는 세상을 좀더 열심히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2004. 8. 16.)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8. 16.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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