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달려드는 음주운전차량에 들이 받혀 양쪽 차가 다 폐차되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차를 몰고 교차로에 들어설 때마다 저도 모르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그래 그런지, 운전을 함부로 하는 이들을 보면, 기독교인답지 않게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늘 안타깝습니다.
마구잡이로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쥐꼬리만한 양심은 남아서 새삼스럽게 경고등을 깜빡이며 내빼는 사람, 조금만 안전거리를 두고 주행하면 잽싸게 그 틈새를 타 얄밉게 끼어 드는 사람, 담배꽁초나 휴지를 차창 밖으로 사정없이 내던지는 사람, 아예 정지선이니 횡단보도니 가릴 것 없이 차 앞머리를 들이민 채로 보행자를 한껏 불편하게 하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슬금슬금 출발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려 대는 사람, 야간에 주행할 때 마주 오는 차를 아랑곳 않고 상향등을 켜고 내달려오거나, 앞차의 운전자야 불편하건 말건 나 편한 대로 상향등을 켠 채 계속 뒤따라 붙는 사람,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고속 주행 중 갑자기 차선을 바꿔 주변을 달리는 운전자들을 한껏 놀래는 사람들......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과연 운전면허를 제대로 딴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라에서 정지선 위반 차량을 엄한 법으로 다스려 벌금을 물린다는 뉴스가 나온 후로, 정지선을 위반하는 운전자가 눈에 띄게 줄어 좋긴 한데, 요즘은 아예 정지선 몇 미터 앞에서부터 차를 세우는 바람에 신호를 대기하며 뒤쪽에 서 있던 차들은 쓸데없는 신호를 한 번 더 받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튼 교통질서가 한결 나아진 점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마음 한 쪽에 늘 찜찜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꼭 벌금을 물리며 이런 저런 법으로 옭아매지 않는 한, 스스로는 작은 교통질서 하나도 지킬 수 없을 만큼 우리 국민의 수준이 낮은 것이 낯뜨겁기 때문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심지어 음식점에서 차려 놓는 반찬의 가짓수나 각종 경축행사의 축의금액까지 정부에서 법으로 정해 놓은 적도 있었던 슬픈 기억이 아직 새롭습니다.
어느 붐비는 대중음식점에 들어가 점잖게 음식을 시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더 늦게 온 사람들에게 먼저 음식을 내 주는 것을 보다 못한 어떤 손님이 큰 소리로 종업원을 불러 아주 상스런 욕설을 섞어 독촉했더니 즉시 음식을 갖다 주더랍니다. 스스로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큰 소리로 욕하고 상스럽게 인격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말을 해야만 다른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 참된 자유와 평화는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리되면, 자발성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대신 이러저러한 규제를 강화하는 저급한 법조문만 늘어나게 됩니다. 벌금을 물리든 물리지 않든, 법규와 질서를 스스로 지키는 ‘상식’이 있어야 정말 살기 좋은 사회가 됩니다. 정지선 규제법같은 자존심 상하는 좀스런 법규가 나날이 줄어들어 ‘상식’이 통하는 좋은 사회를 만듦으로써, 무너져버린 우리 자존심의 정지선을 스스로 지켜낼 수는 정말 없을까요? (2004. 7. 26.)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7. 26.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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