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높은 열 때문에 소아과에 입원 치료 중인 애기를 심방하였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는 아이 부모를 위로하고 아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손에 링거 줄을 달고 병원에 비치된 유모차를 타고 복도에 조용히 마실 나와 있는 아이는 고열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 얼굴이 많이 핼쑥해져 있었습니다. 약 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유난히 더 깨끗해 보이는 아이 옆에 앉아 한참동안 지친 아이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참 많이 아팠지만 눈빛만은 오히려 초롱초롱 더 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별밤처럼 빛나는 눈동자, 그 눈동자를 야무지게 감싸고 있는 초겨울 첫눈처럼 선명한 흰자위를 보며 아이의 때묻지 않은 맑은 영혼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빤히 마주 보는 아이의 투명한 눈빛을 잠시 지켜보며,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 맨 처음 빛을 만드신 뜻, 빛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뜻밖의 공포와 두려움에 곧잘 휩싸이는 까닭, 눈이라는 귀한 기관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생각해 보다가 느닷없이 쑥스럽고 부끄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의 눈빛에 비하면 제 눈은 세상의 잡다한 때가 이미 너무 많이 묻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잠시라도 눈망울 해맑은 아이에게 저의 탁한 눈을 보여주기가 싫어서, 남몰래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하다가 화들짝 들킨 듯 얼른 눈을 딴 데로 돌려 버렸습니다. 눈은 사람의 전인격을 반영하는 마음의 창입니다. 인간은 눈빛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합니다. '눈으로 말한다'는 유행가 가사도 그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눈빛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고 그 눈빛으로 상대방을 몹시 험하게 몰아 부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의학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 마음의 열린 정도를 곧잘 읽어냅니다. 정신과 의사의 눈은 내과의사의 청진기와 같다는 표현도 그리 심한 과장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리 감추고 숨기며 위장하려 해도 '눈빛언어'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어서 경찰관들도 복잡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눈빛을 예리하게 관찰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눈빛을 그래서 '말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떤 눈빛으로 상대를 대하느냐에 따라 그 관계의 깊이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빛 바랜 흑백사진 속 어린 시절 저의 모습 속에서도 후줄근한 옷차림과는 달리 퍽 깨끗하고 맑은 눈망울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시력 좋다고 큰소리치던 시절은 어디 가고 이제는 책상 앞에서 일을 할 때마다 돋보기를 하나 더 써야 할 만큼 시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안경을 바꿔 끼는 불편을 겪을 때마다, 세상의 지저분한 것들 그만하면 많이 보았으니 더는 볼 생각을 마라는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모쪼록 제 곁의 사랑하는 이들이, 험한 세월 속에 많이 흐려지고 초라해진 저의 눈빛 속에서, 듬직한 세월의 헛되지 않은 무게와 하늘사랑의 따스한 깊이와 심오한 영적 분별력의 한 자락만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2005. 9. 1.)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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