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피곤했던 탓인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어젯밤, 군대에 다시 불려가 그 고된 군 생활을 고스란히 한 번 더 하는 악몽에 내내 시달렸습니다. ROTC 장교로 임관된 뒤 다시 공수특전여단에 차출되어서 일반 보병부대 장교들과는 전혀 다른 교육훈련을 한 번 더 받으며, 순간순간 죽음의 공포를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정말 강도 높은 공수훈련과, 생각만 해도 숨 가쁜 특수전술 훈련을 끊임없이 받으며 군대생활을 했던 터라, 전역한 지 3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수고로움과 고통은 여전히 생생하여 참으로 얄궂게도 어쩌다 꿈만 꾸었다하면 어김없이 다시 특전단에 붙들려 가 지지리 생고생하는 꿈을 계속 꾸는 겁니다. 지난 밤 꿈속에서도 그랬습니다. 26년 전에 받은 소집해제 증서를 가져다가 모병담당관에게 들이밀며 “왜 하필 나만 다시 군대생활을 해야 하느냐”고 아무리 애원하고 목 메이게 하소연해도 막무가내요 쇠귀에 경 읽기, “좌우지간 너는 군대생활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답답하고 매몰찬 대답뿐이었습니다. 하릴없이 그 험난한 세월을 이리 세고 저리 헤아린 끝에 다시 제대할 날짜가 거의 다 되어 슬금슬금 귀향할 꿈에 젖을 즈음에 눈을 떠보니 하룻밤 허망한 꿈, 비록 하룻밤 꿈이지만, 채 가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천정을 보며 지난밤의 지리한 마음고생을 곰곰 생각할수록 약이 오르고 속이 상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주일 낮예배가 끝나고 교회 식당에서 교우들과 함께 즐겁게 밥을 먹으며 밥상공동체의 기쁨과 안락함을 마음껏 누리다보면 어느 순간 느닷없이 교회당 바깥 어딘가에서 “완전군장에 선착순 집합!!!”이라는 칼날 같은 명령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고, 잠시 후 주변에서 식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교우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아, 여기는 군대가 아니라 우리 교회지’하는 생각으로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온한 느낌과 함께 느긋한 일상으로 조심스레 돌아오곤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끊임없이 살벌하게 교수되는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 덕분에 내내 무시무시한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날마다 가위눌리는 삶을 살았는데, 나이 먹은 지금은 공수특전단원 시절의 숨막히는 분위기에 눌려 겨우 겨우 얻은 평화와 안식을 편안한 잠자리에서조차 미처 다 누리지 못하는 억울함이 많습니다. 한국전쟁과 사일구, 오일육, 월남전 그리고 부마사태와 오일팔 광주민중항쟁, 서해교전, 얼마 전 최전방 GP의 총기난사사건에 이르기까지, 살갑고 소중한 가족들의 생목숨을 허망히 먼저 떠나 보내고 한을 품고 사시는 이들은 평생 또 어떤 꿈으로 가위눌리며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서글픈 조국의 분단상황 탓에 하나뿐인 생목숨이 사라져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가족을 잃고 잠 못 이루는 분들의 눈물이 헛되지 않아 우리 조국이 하루 빨리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루고 우리 모두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2005. 8. 18.)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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