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급한 일로 때 이른 식사를 하는데 밥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너무 이른 시간에 밥을 먹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물우물 밥알을 넘기며, 특별히 아픈 곳도 없이 이상하게 입맛이 없는 이유를 곰곰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안경을 미처 챙겨 쓰지 못한 채 밥상머리에 앉았기 때문에, 상에 놓인 이런 저런 반찬의 맛깔스런 윤곽이 모두 다 흐릿하게 보여 그랬던 것임을, 안경을 챙겨 쓰고 몇 숟갈의 밥을 더 뜨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밥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먹는 것임을, 아니 입으로 밥을 먹기 전에 눈이 먼저 음식의 맛을 재빨리 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그 아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유혹의 첫 단추는 하와의 눈동자에서부터 꿰어지고 있었습니다. 뱀에게 속은 여자의 탐욕스런 눈이 선악과를 보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의 물꼬는 지금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으리라는 어설픈 추론도 가끔 해 봅니다. 좀 더 엉뚱하지만,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순간 선악과의 ‘디자인’이 참 매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눈을 통해 들어오는 매우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이, 선악간 사람 마음의 흐름을 아주 뜻밖의 방향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성의 역할이 강조되던 모더니즘 시대와 달리, 인간의 감성이 진리의 표준이나 되는 듯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면서 감성의 원초적 단서가 되는 시각디자인의 눈부신 위력은 현대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상상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인의 패션감각이 급성장하게 된 까닭을 칼라 TV의 등장에서 찾는데, 한국인의 디자인 감각 역시 칼라 TV 브라운관을 통해서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수준급 홍보영상물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 “같은 품질이면 디자인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거나 심할 경우에는 “품질이 다소 처지더라도 디자인이 나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많은 것을 보더라도 디자인이 사물의 본질을 판단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mp3 플레이어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 레인컴이,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시각디자이너인 김영세 씨(이노디자인)의 프리즘형 디자인을 제품에 반영하면서 연간 매출액 수천억 원을 넘기며 단번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라든지, 국내 어느 대기업이 큰돈을 들여 외국 디자인회사에 의뢰하여 만든 상징 디자인을 간판에 내걸면서부터 국제적인 기업 인지도가 급상승한 것에서도 디자인의 위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우리네 삶도, 밥 그릇 수가 하나 둘 늘어감에 따라, 내 삶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어,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여전히 살맛 나는 세상임을 깨우치도록 조금씩 더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005. 8. 4.)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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