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무실을 찾아오신 아버님께서 사무실 창문이 너무 좁아 환기가 잘 되지 못할 것을 내내 염려하시더니 며칠 전에는 제 방을 찾아오신 최 선교사님께서 느닷없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빛깔인 녹색을 자주 보고 살아야 한다며 사무실 책상의 방향을 180도 돌려서 창 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했습니다. 책상 주변의 산더미 같은 책과 서류 뭉치 그리고 아무리 간추려도 어지럽기만 한 전선과 코드를 어떻게 추스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 오던 중에, 진정으로 제 건강을 염려해 주는 분들의 거듭되는 주문을 외면만 하기에는 묵직한 몸 상태가 예사롭지 않아 큰 맘 먹고 통풍구를 조금 넓히는 작업 끝에 책상을 돌려놓았습니다.
완산칠봉 북서쪽 오목한 산자락 바로 아래쪽 정혜사 바로 앞에 교회당이 있어서 창문만 열면 초록향기 물씬 나는 산자락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가까이 있는 그 좋은 선물을 등 진 채 날이면 날마다 묵직한 호도색 책장과 해묵어 칙칙한 책 뭉치만 마냥 바라보며 눅눅하게 지내다가, 책상 방향을 바꾸고는 창 가리개를 활짝 열고 약간 좁기는 하지만 창문 너머 코앞에 있는 초여름의 싱싱한 초록 향내를 눈으로 맡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폭이 좀 좁은 게 아쉽지만 사무실 천정 높이까지 높고 길게 만들어진 창문을 통해, 눈을 들어 바라볼 때마다 완산칠봉 산자락이 참으로 포근하 고 반갑게 다가옵니다.
좀 자세히 보면 초록도 여러 가지, 올 봄에 돋은 새순들의 연초록에서부터 나무 줄기와 이파리마다 각기 다른 명도와 채도의 진초록 그리고 줄기와 잎새 사이사이에 알맞게 자리잡은 검은 빛 숲 그늘이 어쩌면 그리도 아기자기한 지 모르겠습니다. 숲새에 노니는 바람도 볼 때마다 달라서 바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초록 풀잎들의 춤사위도 그때마다 다릅니다. 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흰 깃털이 돋보이는 날갯짓으로 내달리듯 수평으로 날아가는 까치도 보이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들이 산 능선에서부터 비탈 쪽으로 내려 꽂히듯 곤두박질 곡예비행을 하다가 잽싸게 멈추면서 나뭇가지 아래에 살포시 앉는 멋진 모습도 보입니다. 적당히 보기 좋게 구불구불한 산등성이 능선에 맞닿은 듯 보이는 하늘 빛깔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한 시간 전에 보던 것과 이제 보는 것이 또 다릅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 좀 더 일찍 창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걸 그랬습니다. 초록 향내 물씬 나는 초록 숲을 바라볼 때마다, '빛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이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신 깊은 뜻을 새삼 깨달으며 그동안 답답하던 가슴속에 한없는 평화와 안식이 밀려 들어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답답하실 때마다, 자연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초록빛 향내와 생명을 받아 쉼을 누리도록 하십시오. 그도 저도 어려우시다면 창 가까이로 책상을 옮겨 일하시는 틈틈이 창밖에 눈길을 주어 싱싱한 초록 향내 눈으로라도 맡아보십시오. (2005. 7. 14.)
*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낮 13:55, FM 103.7 MHz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