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콘서트 공연을 위해 우리 전주열린문교회당을 방문한 가수 홍순관 씨가 공연 첫들머리에 대뜸 “개미 다리가 몇 개인지 아느냐”는 뜻밖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학교에 오갈 때나 집에서 늘 흙밭을 뒹굴며 지낼 때 풀숲이나 나무 뿌리 근처를 바삐 오가는 크고 작은 개미를 가까이하며 그 쪼그만 것들을 노리개 삼아 무던히 귀찮게 하며 자랐으면서도 40여 년 세월을 훌쩍 거스르는 날카로운 질문 앞에 느닷없이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저 뿐 아니라 콘서트에 참석한 이들 거의 대부분이 엇비슷하게 당황하는 눈치가 또렷했습니다. 꽤 길게 느껴졌던 짧은 시간이 흐른 뒤 홍순관 씨는, “너무 높은 곳만 보는 세상살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만 낮은 땅을 찬찬히 살피는 일을 너도나도 게을리 한 것 아니냐”는 속 깊은 한 마디를 덧붙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함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화들짝 들킨 것처럼 몰아치는 부끄러움에 귀밑까지 화끈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나없이 가난하여 갖고 놀 만한 무슨 장난감이 없던 어린 시절, 마을 앞 왕골 밭에서 왕골 대를 뽑아 절반을 쪼갠 뒤 쪼개진 한 쪽을 꺾어 따닥소리가 나게 만든 왕골 딱딱이를 내두르며 온 마을 안을 냅다 뛰어 다니거나, 몹시 구하기 힘든 자전거 바퀴 축을 굴려놓고 철사로 바퀴 조종 손잡이를 대충 만들어 굴렁쇠를 굴리고 다니거나, 그나마도 없으면 수숫대를 꺾어 줄기 끝 부분을 기역자로 꺾은 다음 그것을 땅에 대고 밀어붙이며 입으로 위잉윙 자동차 엔진 소리를 내며 열심히 싸돌아 아니거나, 여름철이면 애매한 풍뎅이를 잡아 목을 몇 바퀴 돌려 마루나 땅바닥에 눕혀 놓고 그것이 바닥을 맴돌며 붕붕거리는 날개소리와 함께 날갯짓한 곳의 자잘한 흙먼지들이 깨끗하게 쓸려 나가는 것을 고부라지게 지켜보거나, 아무 개울물에나 텀벙거리고 들어가 멱을 감기도 하고, 송사리나 미꾸라지 개구리를 벗하며 놀던 아스라한 유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닌 터라, 어쩌다 도회지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늘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것, 푸근한 흙 냄새 속에 어린 꿈과 마음이 자란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그럭저럭 풋풋한 감성을 유지하고 사노라 나름대로 자부했던 마음자락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이 서둘러 저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만큼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 늙어서 사역에서 물러앉게 되면, 집 뒤에 작은 산이 있고, 텃밭이 딸린 집 앞에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조용한 시골에 들어가 남은 삶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는 말을 반 농담조로 늘 주절거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요란한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누가 오라지도 않는 삶의 언덕길을 아등바등 기어오르느라, 어린 시절 친한 벗이었던 개미의 바지런한 숨소리, 길 가 허물어져 가는 작은 담장 한 귀퉁이에 어엿하게 핀 작은 들꽃의 노랫소리도 미처 새겨듣지 못한 채 정신 없이 내달려도 정말 괜찮은 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늘 문이 또 한 겹 밝게 열리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5. 7. 7.)
*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낮 13: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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