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乙巳)년 7월 29일,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의 특사인 W. H. 태프트는 필리핀 방문 길에 일본에 들러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를 만나,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먹는 일을 서로 눈감아 주기로 밀약을 맺었습니다. 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핵심내용은, 첫째, 미국과 같은 친일국가가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생각을 접으며, 둘째,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미국․영국 정부의 상호 양해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자 유일한 수단이며, 셋째, 일본이 한국에 대해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극동 평화에 공헌한다는 점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의 기본 방향에서 나온 이 밀약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이기적인 태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러일전쟁이 터지자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은, “한국은 자치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여 한국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능률 있게 통치한다면 만인을 위해 보다 좋은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일본의 조선 지배를 공인했습니다. 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서 미국이 한국문제에 끼어 드는 길을 근원적으로 차단한 일본은, 1905년 8월 12일에 영국의 청국 침략과 일본의 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하는 ‘제2차 영․일 동맹’을 체결한 다음,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맺어 조선을 실질적으로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4년 뒤인 1909년 기유각서에 의해 조선의 사법권까지 빼앗은 일본은 그 다음 해인 1910년 경술(庚戌)년 8월 22일 한일합방을 강제로 조인하고 그 일주일 뒤인 8월 29일에 한일합방에 관한 칙어를 발표케 함으로써 우리의 국권을 완전히 손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6년에 걸친 잔혹하고 지루한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6월은, 현충일(6일)과 한국전쟁발발기념일(25일)과 같은 민족사의 큰 상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하는 달입니다. 북-미 갈등, 독도 문제로 상징되는 한-일 갈등, 여전히 어렵기만 한 남-북 관계, 동-서 지역갈등, 남-남 이념갈등, 6자 회담 등으로 몹시 어수선한 나라 안팎 상황이 마치 민족사의 큰 아픔이 잉태되던 구한말과 적잖이 닮은꼴로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어 우리 민족사에 남긴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5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휴전선 비무장지대 주변 철조망의 녹슨 가시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한 많은 우리 조국의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7천만 우리 한민족이 똘똘 뭉쳐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몹시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며 힘과 지혜를 모아야만 할 때입니다. (2005. 6. 23.)
*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낮 13: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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