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기술이 굉장히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 망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라에서 몹시 답답해 하다가, 귀국하여 인천공항에서부터 전국 곳곳으로 시원하게 뚫린 고속화도로망을 마음껏 이용하여 고향인 전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빠르게 흘러 지나가는 조국 산천의 정겹고 풍요로운 풍경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수준과 저력이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몹시 어렵게만 여겼던 인터넷을 요즘은 글자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로부터 칠팔십대 노인들까지 일상적으로 편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꿈꾸듯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꾸준히 축적돼온 사회간접자본과 눈부시게 발달한 정보통신망 덕분에 우리네 일상생활이 눈부시게 편리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손끝 하나로’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손끝을 놀릴 필요도 없이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을 조작하고 작동시킬 수 있는 세상도 올 것입니다. 잘 정비된 인터넷 망 덕에 요즘은 은행에 직접 오갈 필요 없이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으로 금융거래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교단체와 사회복지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는 일이 잦은 저에게 이보다 더 편리한 방법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마치 은행직원이나 된 듯,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몹시 번거롭던 송금작업을 책상머리에 앉아 아주 재빨리 끝마칠 수 있어 참 편리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뱅킹을 하기 위해 주거래 은행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인터넷뱅킹 메뉴를 선택하고 인증서 암호를 적고 보안카드 번호로 신분을 인증 받은 다음 은행 망 안으로 들어가 송금할 계좌 목록에서 해당 계좌를 선택하고 송금할 액수를 적어 넣고 통장비밀번호와 이체비밀번호를 또 다시 적고 확인 단추를 눌러 송금하는 일을 하다말고 느닷없이 착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익숙해진 탓에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밟는 절차였지만, 2중 3중 보안장치로도 안심을 할 수 없어 이토록 수많은 보안장벽을 설치해 놓고 거래할 수밖에 없을 만치 세상이 각박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부신 기술로 누구는 열심히 남의 정보를 빼내어 악하게 이용하는 일을 하고 또 누구는 역시 빛나는 기술로 그것을 막아내는 신기술을 밤샘하며 만들어야만 하는 이런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안식’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참 아름다운 생각으로, 저희 전주열린문교회 요람에 교우들의 온라인 계좌 목록을 표로 만들어 나눠주며 교우들 사이에 서로 은밀하게 돕고 섬기는 일을 해 보도록 권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그 일을 그만 접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슬프게도, 하나님의 창조물과 달리 “죄로 부패한 인간이 만드는 것들은 언제나 생명과 사망을 동시에 안겨 준다”는 어느 신학자의 말이 정말 맞긴 맞나 봅니다.(2005. 5. 9.)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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