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2박 3일 동안 육로로 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단풍이 물든 시절도 아니고 그렇다고 녹음이 짙은 여름철도 아니고, 아무리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이라 해도 봄꽃소식조차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봄철에 가는 것이 내내 아쉬웠는데, 그나마 통일전망대를 거쳐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며 몹시 번거롭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괜한 고생 사서하는 것 아닌가'하는 조바심까지도 났습니다. 아무튼 설렘과 호기심이 잔뜩 뒤엉킨 채 들어선 북녘, 자동차로는 약 3분 정도의 거리 차밖에 없는데도 남쪽과 북쪽의 도로변 풍경은 마치 머나먼 이국에 온 듯 전혀 달랐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남북 양측의 복잡한 출입국절차를 밟으며 먼 길을 이동하는 사이 그렁저렁 하루가 가버렸습니다. 금강산 관광특구 온정리 마을 안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한 온천빌리지에 숙소를 배정 받고 여장을 풀고 나니 그만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지만, 말로만 듣던 민족의 명산 금강산은 저무는 해 그림자 아래서도 무던히 매혹적인 자태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시달리며 후회 반 염려 반이었던 마음은 순식간에 어디 가고 여기저기서 탄식소리처럼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름 가을이 아닌 봄철의 금강산행을 몹시 아쉬워했던 지레짐작이 단번에 부끄러워질 정도로 금강산의 위용과 자태는 그 무엇보다도 빼어났습니다. 사계의 변화에 따라 산 이름을 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으로 달리 부르는 이유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천하절경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숙소가 있는 온정리 마을 일대, 북측이 내놓은 관광특구 안에는 남과 북의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들이 한데 어우러져 세워져 있고,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우리 동포들이 스스럼없이 만나 통역 없이도 가슴에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곳 온정리. 우리 조국과 민족의 통일은 금강산 관광특구 안에서 이미 그처럼 어엿하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금강산에 있는 21개 등산로 중에서 북측이 남측에 허락한 것은 구룡연, 상팔담, 해금강과 삼일포 일대, 그리고 만물상 코스의 4곳입니다. 돌아오는 날 오전에 거의 수직에 가까운 만물상 등반코스에서 휘몰아치는 돌풍과 때아닌 눈발과 싸워가며 천선대를 거쳐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망양대에 올라 내려다본 동해는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산 도중, 망양대에 등산길 중간쯤에서 등산로변 바위를 붙들고 서서 엉엉 우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금강산 비탈 장전항이 고향이라는 그 실향민 할아버지는 엉엉 울다말고 주먹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곁에 서서 몹시 난감해 하는 저를 향해 갑자기 "자네가 역사를 아는가? 자네들이 민족을 알고 고통을 아는가?"라고 물어왔습니다. 몹시 격앙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젠가 우리 민족이 완전히 통일되어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그 날에 할 요량으로 어르신께 아무런 대답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후끈 달아오른 통일에 대한 열망 탓인지, 북에 아쉽게 두고 온 금강의 절경이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2005. 5. 2.)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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