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전후하여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의 어두운 자취에 대한 아쉬움이 큰 만큼 새 해 새 아침에 대한 소망 또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 같습니다. 새 해 새 아침이라 해서 무슨 별난 해가 뜨고 색다른 달과 별이 뜨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 마음 속 어수선한 세밑 저자거리에는 늘 약간의 초조함과 또 약간의 설렘이 뒤죽박죽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때 요맘때쯤이면 일간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과 당선작들을 곁눈질하며 손때 잔뜩 묻은 습작 노트를 헝클어진 감정으로 매만지곤 했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노트를 보면 그 낯뜨거운 치기(稚氣)에 혼자 쓴웃음이 날 때가 많지만 그 땐 무엇이 그리 골똘히도 사무쳤는지 빛 바랜 공책 갈피마다 문학청년의 숨가쁜 박동소리가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황우석 교수의 신화가 조급하게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요즘은 또 그와 반대로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시끌짝합니다. 그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에 저도 몰래 그만 젖어들었는지,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살피다가 황우석 교수 사건 관련 소식이 별로 안 보이는 지면이 괜히 심심하게 느껴져서 저 스스로도 몹시 놀랐습니다. 아무튼 요즘 같은 연말연시가 되면 각 언론사와 잡지사마다 나름대로 ‘해외 10대 뉴스’나 ‘국내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몇몇 신문을 보니 국내 뉴스 첫 칸에 어김없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논문 조작사건을 꼽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경기 빼고 온 국민이 한꺼번에 꿈과 절망 사이를 이토록 순식간에 오락가락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황우석’이라는 이름 앞에 온 백성이 거의 똑같은 표정으로 웃다 울다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각종 질병과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또한 짙다는 사실을 이 사건보다 더 또렷하게 확인시켜 준 예는 아마 드물 것입니다. 아무튼 각 일간지와 잡지사에서 앞을 다투어 나라 밖과 나라 안의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발표하긴 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기쁘고 밝고 희망찬 소식보다는 어둡고 가슴 아프고 속 상한 뉴스들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몹시 답답했습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적은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말세’라는 말이 자주 나올 정도로 우리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답답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깊은 어둠 속에서 오래 참고 기다리다보면 도무지 뜰 것 같던 아침해가 마침내 번듯 솟아오르듯이 우리 삶 또한 그럴 것이므로 어두운 시세 따라 꿈과 희망을 아주 접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작심삼일일망정 묵은 해 눅눅한 기억의 먼지를 훌훌 털어 버리고 새해 새 아침을 맞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될 것이므로, 해가 바뀌기 전 남은 몇 날 동안 ‘개인과 가정(직장)의 10대 뉴스’를 조용히 한번 손꼽아 보시면 어떻겠습니까?(2005. 12. 29.)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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