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몇 권을 사러 어느 서점에 들렀더니 서점 입구쪽에 벌써 2006년 다이어리와 크리스마스 카드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분위기가 예전같지는 않지만, 서점 입구의 다소 들뜬 분위기와 빨간 옷의 싼타할아버지 복장을 한 안내원들이 열심히 손님을 부르는 풍경에서 물 흐르듯 또 한 해가 갔음을 실감합니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하염없이 밀려오는 자잘한 감사와 아쉬움과 낯뜨거움 그리고 아주 막연하나마 일년만에 슬그머니 다시 꺼내드는 해묵은 결심 등등의 여러 감정들이 대추나무에 연실 걸린 듯 엉크러져 차분히 마음 가누기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유치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내 마음 나도 몰라 몹시 혼란스러운 것도 매번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자체 제작하는 다이어리에 참고할 만한 좋은 정보도 얻을 겸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정성껏 만들어 내놓은 여러 종류의 다이어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백성들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 미국의 원조물자와 배급에 근근히 기대어 살던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지천으로 남아도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고, 공책과 필기구가 거의 없어, 몽당연필을 쓰다가 마침내 연필 끝에 대깍지를 씌워서까지 연필을 마저 쓰고, 조금만 힘을 주면 죽죽 찢어지는 거므티티한 재생종이로 만든 공책을 쓰고, 그나마도 종이가 귀해서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쓰고 남은 공책 귀퉁이를 뜯어 담배를 말아 피우던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좋아도 너무 좋은 질감의 문방도구를 고르는 데만 한참을 걸릴 정도로 그 종류가 많고, 멀쩡한 물건들을 아주 조금 쓰다가 이리 흘리고 저리 내버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참 간사하게도 좋은 것이 좋은 줄 까마득 모른 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전혀 모르고 사는 오만불손한 우리 세태가 못내 송구스러웠습니다. 일기를 써야한다고 배웠고, 선생님께 검사 받기 위해 어거지로 쓴 일기일망정 그것을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 좀 낫다는 것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깨우쳐 알았기 때문에, 여러 해에 걸쳐 꾸준히 일기를 쓴 적도 있어서 두툼한 대학노트로 몇 권의 개인기록을 자랑스럽게 은밀히 간직했던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일기장 앞에서까지 여지없이 엿보이는 치사한 이중성 때문에 쓰레기 소각장에 나가 일기장 뭉치를 눈물과 함께 모조리 태워버린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바쁜 일과 때문에 그저 하루 하루 있었던 일을 간단히 메모하는 정도로 다이어리를 쓰고 있지만, 잠들기 전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새날을 차분히 준비하는만큼 삶에 능률과 탄력이 생기는 것을 끊임없이 느낍니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시간을 써야만 합니다. 곧, 금쪽같은 시간을 정말 경제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만큼은 기꺼이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속는 셈치고, 오늘 퇴근 길에, 가까운 서점에 들러서 예쁜 <2006년도 다이어리>를 한 권 골라보시면 어떻겠습니까? (2005. 12. 15.)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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