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종종 산행을 하는 저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별 말없이 그냥 씨익 한 번 웃고 지나갔지만 며칠동안 그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새삼스런 질문에 썩 그럴 듯한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산을 찾는 이유들이 제각각이겠지만, 저더러 한 가지 이유를 굳이 꼬집어 말하라면 산길을 걸으며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산골짜기와 능선의 틀은 어제나 오늘이나 별 다름이 없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듯이, 똑같은 산 똑같은 등산로를 걷는데도 오늘의 산은 어제의 산이 아닙니다. 어제 피었던 꽃 오늘은 없고, 어제 춤추던 잎새가 오늘은 낙엽 되어 뒹굽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쉴새없이 변하면서도 듬직한 산의 근본 품새만은 늘 한결같고 어엿합니다.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겉모습은 산과 사람이 엇비슷하다해도, 비바람 눈보라에도 끄떡없는 산의 근본 자태는 변덕스런 인생들이 언감생심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듬직합니다. 어쩌면 산의 듬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낀 까닭에 속마음에 어둑한 그늘이 드리울 때마다 제가 줄기차게 산을 찾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깃털처럼 많은 나날을 살지만, 새벽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 시작되는 오늘 하루의 삶이 늘 새로운 만큼 때로 턱없이 낯설고 힘든 것처럼, 자주 오르내리는 산길 또한 그러합니다. 그만큼 자주 오르내리고 그만큼 눈에 익은 등산로라면 세월 따라 제법 익숙해 질 법도 하건만, 큰산은 큰산대로, 작은 산은 또 작은 산대로, 도중에 숨가쁘고 다리 팍팍한 것은 늘 거기서 거기입니다. 산비탈 초입, 몸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았는데 엉뚱하게 중턱에서 몹시 고단한 때도 있고, 산을 찾아 나서기 찜찜할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산을 오르는 도중 뜻밖에도 몸 상태가 아주 쾌적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몹시 힘들게 산을 기어오른 것 같은데 뜻밖에 짧은 시간에 정상에 올랐는가 하면, 제법 신바람 나게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하게 시간이 많이 걸린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하루 하루가 늘 난생 처음 맞이하는 낯선 시간이듯이 산을 오르는 것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숨가쁜 산비탈, 팍팍하게 맥빠지는 다리 때문에, 괜히 왔다는 생각, 그만 거기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생각, 그만 돌아서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이들의 가쁜 숨소리를 유심히 새겨들으려 애씁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이들도 나만큼은 힘들다는 사실, 그네들도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올 때마다 나의 거친 숨소리에서 얄궂게도 큰 위로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큰 숨으로 그냥 한 걸음을 더 내딛습니다. 지금 인생의 어느 산봉우리를 힘겹게 오르고 계십니까? 어느 그늘진 산비탈에서 아득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십니까? 인생의 산봉우리를 오르며 삶의 짐이 힘겹고 무거워 그 짐 그만 벗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곁에 있는 이들의 거칠고 가쁜 숨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 자잘한 위로를 가슴 깊이 받아 보십시오. (2005. 11. 24.)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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