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 바람의 영향으로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이 하나 둘 사라지는 사이, 신세대들 사이에 이러 저러한 새로운 기념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11월 11일의 ‘빼빼로 데이’입니다. 어느 제과회사에서 뜨개질바늘 굵기의 1자 모양 밀가루반죽 봉에 초콜릿과 땅콩조각을 발라 ‘빼빼로’라는 과자를 만들어 팔면서 그 과자의 판촉전략으로 정한 날인 듯한데,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그 날 한 학급에서만 자그마치 20여만 원어치의 빼빼로가 팔렸다니 상상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액수의 빼빼로가 젊은이들의 손에서 왔다갔다했을 것입니다. 과자회사는 큰돈을 벌었겠지만 순수한 동심까지 장삿속으로만 바라보는 우리 세태가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4남매를 맡아 기르고 있는 저도 그 날 밤에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받아와 입에 연신 꽂아(?) 주는 빼빼로를 실컷 얻어먹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둘째 딸아이를 통해 확인해 보니, 빼빼로 데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억하기도 좋게 매달 14일마다 무슨 날이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1월 14일은 애인에게 다이어리 선물하는 다이어리 데이, 2월은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 데이, 3월 14일은 그 반대로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 데이,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 4월은 독신들이 검은 옷을 입고 짜장면을 먹으며 서로 위로하는 블랙 데이, 5월은 연인들이 장미 꽃다발을 주고받는 로즈 데이, 6월은 로즈 데이에 장미를 주고받은 연인들이 입맞추는 키스 데이, 7월은 애인을 선보이거나 은제품을 선물하는 실버 데이, 8월은 삼림욕을 하면서 피서하는 그린 데이, 9월은 음악과 사진을 주고받는 뮤직&포토 데이, 10월은 깊어 가는 가을, 연인과 함께 분위기 있는 곳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와인 데이, 11월 11일의 빼빼로 데이, 14일의 무비 데이, 그리고 12월은 추운 겨울날 연인을 따스하게 감싸안아 주는 허그 데이 등등, 젊고 어린 사람들의 들뜬 심리를 제품 판촉전략에 교묘하게 활용하는 얄팍한 상혼이 배어있는 날들이 뜻밖에 많아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13년째 섬기고 있는 의료선교단체인 한국누가회(CMF)에서는, 신세대의 신흥세시풍속이 지나치게 장삿속으로만 굳어지면서 가뜩이나 좋지 못한 개인주의를 계속 부추기는 것이 민족공동체의 앞날에 심각한 만성질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가 아닌 ‘하나가 또 하나를 생각하는 날’ 곧 분단 60년의 슬픈 장벽을 아직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며, 남한이 북한을 생각하고 북한이 남한을 생각하면서, 조국과 민족의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을 준비하며 자주민족의 심지를 곧게 하는 날로 정하고, 평화박물관 건립기금을 모으기 위해 ‘홍순관 평화콘서트’를 비롯한 뜻 깊은 행사를 전국의 모든 의학계열 캠퍼스에서 열었습니다. 다른 기념일들도, 우리 민족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속보이는 상업주의와 개인주의를 벗겨내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여 하나됨을 굳게 하는 뜻 깊은 날로 하나 하나 바꾸어 나가면 어떻겠습니까? (2005. 11. 17.)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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