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해 전 평양을 다녀오는 길에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즐거운 여행의 중요한 조건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짐이 가벼울 것, 둘째 마음에 맞는 동행이 있을 것, 셋째 돌아갈 고향이 있을 것. 이방 중국 땅에서 밤을 지새다시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말씀이었지만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소중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 또한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출발하자마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므로, 문제되는 것은 결국 두 가지 조건밖에 없을 텐데 그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를 자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짐의 무게보다는 마음에 맞는 동행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음에 맞는 동행이 있다면 등에 짊어진 짐이 좀 무거워도 얼마든지 기쁨으로 함께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 복무 시절의 객기가 아직 죽지 않은 탓인지, 정리해야할 생각이 많을 때 혼자 야간산행을 종종 합니다. 어쩌다 한두 사람 동행이 생기는 날은 그네들과 함께 어둠 속에 깊이 잠든 산길을 걷습니다. 혼자 걷는 것과 여럿이 함께 걷는 것 모두 다 나름대로 독특한 멋과 맛이 있고 좋은 점과 아쉬운 점 또한 얼추 반반씩입니다. 한 밤중에 혼자 산을 오를 때는 마음과 가슴으로 생각의 깊이를 한껏 더할 수 있는 유익이 있기는 하지만 문득 문득 좀 심심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삼위가 일체를 이룬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적 피조물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잘 타는 존재임을 혼자 야간산행을 할 때마다 절실히 느낍니다. 바람결에 떡갈나무 잎새가 서걱이는 소리에 가끔 신경이 예민해 질 때마다 어둔 세상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게 사람임을 늘 새롭게 깨닫고, 그럴수록 쉽지 않은 인생길 함께 걷는 이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혼자 공동묘지 앞길을 지날 때 갓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라도 같이 있으면 큰 위로를 받는 게 사람입니다. 언젠가, 호남지방에 폭설경보가 내린 날 밤에 중인리 코스로 모악산에 혼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세차게 쏟아지는 눈이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벌써 발목까지 차 오르더니 헬기장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섰을 때는 퍼붓는 눈과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길조차 사라져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길을 근근히 더듬어 힘겹게 헬기장 너머 정상으로 혼자 향하던 그 밤, 외로움의 그림자가 사실은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생명의 고향인 하나님의 품을 향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인생길, 무거운 짐 함께 나눠질 동행이 있으십니까? 누군가의 소중한 동행이 되어 그의 무거운 짐 사랑으로 나눠지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 동행이 때로는 내 생명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음을 아십니까? 짐의 무게가 어떠하든, 소중한 동행 때문에 고단한 인생길 내내 아름답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2005. 11. 10.)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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