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 교우들과 모악산 야간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행여 햇빛에 뒤질세라 은근히 밝은 보름달 아래 모악을 얼싸안던 2주전의 야간산행도 운치가 있었지만 어제처럼 달빛이 하나도 없는 그믐밤의 산행도 그에 못지 않은 멋과 맛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하늘인데도 모악 비탈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디서 그렇게 한꺼번에 모여들었는지 아스므레하게 눈 깜빡이며 말을 걸어오는 이쁜 별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달빛이 전혀 없는 날일수록 별은 더 맑고 밝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목을 젖혀 좀 찬찬히 하늘의 별을 헤아리다보면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단 한 개도 똑같은 별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꽃이 아무리 많아도 똑같은 빛깔과 무늬의 꽃이 단 하나도 없듯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단 한 명도 없듯이, 별빛이 소곤소곤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똑같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다들 배고프고 추운 시절을 지내느라 그랬겠지만 한 3-40년 전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요즘처럼 화려하고 요란한 밤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력이 모자라 전기도 하루종일 불을 켤 수 있는 특선과 밤에만 불이 켜지는 일반선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도회지에서는 늘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이 금지되었고, 통금과 해제 그리고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온 나라에 떠들썩했습니다. 전화도 TV도 없던 시절, 여름밤이면 으레 마당 한 쪽에 반쯤 마른 풀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당 가운데 있는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면소재지에서부터 끌어온 삐삐선을 타고 합판통으로 대충 만든 스피커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중계방송이나 줄거리가 늘 빤한 신파조 연속극에 온 가족이 함께 빠져들곤 했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으레, 연속극에 푸욱 빠져들어 가끔씩 눈물도 훔치곤 하시는 엄마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그 분들이 활활 부쳐 모기를 쫓아주는 간지러운 부채바람 소리에 젖어 유난히 가깝게 보이는 하늘의 별을 골똘히 헤아리며 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혼자 곧잘 나누곤 했습니다. 이렇듯, 제 어린 시절의 밤은 늘 밤하늘의 이쁜 별 이야기와 아기자기하게 얽혀 있습니다. 모악산 야간 산행을 하며 모처럼 별빛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넘쳐나는 전력과 잘 발달된 각종 조명기구 까닭에 정말 소중한 ‘안식의 밤’을 너무 허망하게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을 잃으면서 잃어서는 안될 소중한 동심도 잃고, 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의 별과 1:1로 마주서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볼 귀한 기회까지 다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상 물정을 알만큼 안다는 중년의 동행들이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한결같이 야간산행을 기뻐하며 좋아하는 모습에서 잃어버린 별빛과 동심에 대한 짙은 향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하기는 했지만, 깊은 밤 모악 정상에서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위해 시려오는 손을 마주잡고 잠시 기도하는 동안 유난히 빛나는 소망의 작은 별 하나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다시 따뜻하게 들어와 박히고 있었습니다. (2005. 11. 3.)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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