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느닷없이 위암 절제 수술을 받으셨던 아버님께서 8개월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완치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70대 후반이심에도 수술과정에서부터 청장년 못지 않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시더니, 이제는 위암 수술을 전혀 받지 않은 분처럼 식사량도 수술 전과 거의 똑같이 회복되셨습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장로님답게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시는 모습, 자식으로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엊그제, 모처럼 휴가를 얻은 김에 오랫동안 마음 속으로 벼르고 벼르던 부자 모자 동행의 하루 나들이를 했습니다. 바람 쐬러 나가시자는 큰아들의 전화에 얼마나 기쁘고 좋으신 지 선약인 듯 싶은 일까지도 별 일 아니라시는 어머니의 흥분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죄스런 마음 무쇠덩이가 되었습니다. 모시러 가는 잠깐 사이에 어머니는 날래게 찻속에서 먹을 것들을 한 보따리 챙겨 들고 나오셨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으신 아버님 앞에서 음식 먹는 것조차 늘 송구스럽던 우리 가족들의 마음에 올무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하동을 거쳐 남해도에 모시고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어 드릴 요량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로 소문난 섬진강 변을 따라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운전을 시작하면 30분도 안되어 까딱 까딱 조는 버릇이 있어 평소 장거리 운전을 많이 삼가던 터라 은근히 조심스러웠지만, 하나님께 졸지 않게 해 주십사 잠시 기도하고 용감하게 운전대에 앉았습니다. 하동을 거쳐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도 남쪽 끝 미조항에 들른 다음 남해도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창선대교 넘어 삼천포대교로, 거기서 다시 사천으로 북상하여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나들목에서 다시 섬진강변 도로로 나와 오던 길 되짚어 오는 350km의 그 먼 길, 당시엔 포장도 되지 않은 험하디 험한 길을,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신 아버님은 많이 굶주린 채 추위에 떨며 걸어서 오가셨다 했습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조촐하게 피어 있는 늦가을 구절초 꽃무리, 화개장터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밭을 지나며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리고, 70대의 부모님과 50대의 큰아들 셋이서 매운탕으로 점심도 든든히 먹고, 어릴 적 아버님으로부터 즐겨 듣던 낯익은 이야기들 하루 종일 다시 챙겨 들으며 훌쩍 건너가 버린 세월의 깊은 강에 추억의 긴 다리를 아름답게 다시 놓았습니다. 하루에 천릿길을 내달렸는데도, 손톱만치도 피곤치 않다는 말씀에서 자식과 함께 나들이한 어버이의 기쁨을 읽을 수 있어 저 또한 많이 기뻤습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다시 섬진강변 길로 접어들 무렵 서둘러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땅거미 지는 강변풍경 멀리 동양화처럼 어슴푸레한 산등성이 한 뼘쯤 위에 유난히 큰 바퀴의 빠알간 태양이 황홀하게 떠 있었는데, 저녁 노을이 아침 햇살보다 훨씬 더 듬직하고 아름다움을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제 어버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끝자락도 저녁 노을처럼 그렇게 내내 아름답고 곱게 해 주시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2005. 10. 27.)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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