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골목에 나와 놀고 있던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와르르 달려들더니 저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차며 “야 임마!”하고 덤볐습니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어이가 없어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꼬마를 쳐다봤더니 이번엔 한 수 더 떠서 팔짱을 딱 끼며 큰 소리로 “너 나 이겨?” 이렇게 묻습니다. 아이 엄마가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자기 자식 하는 짓이 마냥 귀엽고 신기한지 실실 웃기만 할 뿐 무슨 미안하단 말 한 마디를 하거나 철부지 자식을 말릴 기색은 아예 없어 보였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 싶어, 그냥 장난조로 “아니 내가 져.” 그랬더니, 이 꼬마 녀석이 “그럼 가 봐 임마.” 그러는 겁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옛말 하나도 그른 것 없다 싶었습니다.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무엇 무엇해서 모두 18단 쯤 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워낙 날쌘돌이인데다 몸이 아주 단단하더니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한 결과 이것저것 합하여 18단쯤 되니 몸 전체가 그야말로 인간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먹을 내지르면, 진짜로 팔에서 바람소리가 휙휙 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의 진정한 싸움 실력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별 것 아닌 뒷골목 어깨들에게 얻어맞는 모습만 두어 번 보았을 뿐입니다. 늘 맞고 다니는 친구에게 도대체 무술은 뭐 하러 연마했는지 물었더니 이 친구 대답이 걸작입니다. 사람의 몸 구석구석이 다 급소로 보이고 한 방 갈기면 상대가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괜히 사고 치기 싫어서이고, 그래도 자기는 수련을 많이 해서 매 맞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많이 맞아도 별로 다치지는 않으니까 그냥 맞는 게 속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과 대응될 만한 경구(警句) 중에 강무성(强無聲)이란 말이 있습니다. 강할 강(强), 없을 무(無), 소리 성(聲), ‘강한 것은 소리가 없다’는 말인데, 어느 공공기업체에서 이 말을 번역하여 “소리 없이 강하다”는 광고 문구로 써먹기도 했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손톱만큼의 힘과 권세만 있어도 자기보다 힘이 모자라고 약한 이들을 함부로 무시하고 짓밟기를 일삼는 우리 사회는 여기저기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에 비해 실속은 별로 없는 ‘빈 깡통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왕”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자주 들리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정말 강한 힘이 있는 이들은 말이 별로 없고 힘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인간의 무서운 질병을 고치고 죄를 단번에 용서하고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자신을 위해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불쌍한 죄인들을 섬기다가 십자가에서 정말 힘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2천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무기력해 보였던 십자가는 희망과 꿈과 사랑과 구원의 상징이 되어 지구촌 곳곳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 남보다 요란한 깡통소리를 자랑하기보다 우리 마음의 깡통을 진리와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채우는 일을 먼저 힘써야 할 것 같습니다. (2005. 10. 13.)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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