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기발한 공상기법을 동원하여, 동막골 사람들로 상징되는 ‘꿈같은 평화’와 ‘참혹한 전쟁’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전쟁이라는 인류의 고질병을 색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강원도 사투리를 빛나는 소도구로 사용한 이 영화의 제목에 ‘웰컴투(Welcome to)’라는 영어가 들어 있는 것이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이 영화 덕분에 우리 사회에 강원도 사투리의 소박한 매력이 새삼 알려지게 되었고, 요즘은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여러 코미디 영상물에서도 강원도 사투리가 중요한 소재로 즐겨 쓰이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사투리는 강원도 사람들만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강원도 사람을 정말 강원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강원도 사투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 같은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말을 쓸 때 전라도 사람다운 냄새가 제대로 날 것입니다.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에서 한국고전시가를 공부하고 연구하던 1980년대 초반, 전공이 전공인지라 틈만 나면 고서점을 뒤지고 다니다가 어느 날 1900년 무렵에 일본사람들이 펴낸 <전주부사(全州府史)>라는 책이 눈에 띄어 찬찬히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주부(全州府)의 역사를 일본인들의 손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었는데 만들어진 지 80년이나 되었음에도 새책 진배없는 지질과 제본은 말할 것도 없고, 놀랍게도 전주 일대의 지층도와 심지어 전주의 사투리까지도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였던 1970년대 초반에야 우리나라 대학에서 방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에 비추어 일본의 저력이 느닷없이 실감나게 느껴지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새삼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학을 공부하는 석사 이상의 인재가 3천 명이 넘었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일본학을 연구하는 이는 1백 명도 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라도 사람이, “얘, 오늘 내 생일이니까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떡 먹으러 오지 않겠니?”라고 말하면 떡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야, 오늘이 내 생일잉개 이따 저녁 때 떡 먹으로 와라 잉?” 이렇게 말해야 쫀득쫀득한 떡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법이지요. 세계적인 소리예술인 판소리 사설을 모조리 표준어로 바꾸어서 소리를 한다면 그 소리판을 기웃거릴 귀명창들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전라도 사투리에는 전라도 사람만의 혼과 넋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말에 우리 민족만의 혼과 기질이 담기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쫀득쫀득’이라는 말을 어떻게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감칠맛 나게 번역해 낼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조간신문에서 몇 년 뒤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 나라말도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한 어린것들을 미국사람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얼빠진 인간들 모조리 모아놓고 국어시험 한 번 치러서 망신을 좀 톡톡히 주고 싶은 생각이 요즘 간절합니다.(2006. 1. 26.)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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