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입시 철이 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누구는 성공했고 또 누구는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성공한 이에게는 한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만, 참 안타깝게도 긴 세월 수고하고 애쓴 보람도 없이 실패하여 낙담하는 이들에게는 솔직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 그냥 그 이들을 위해 기도나 할 뿐입니다. 위로한답시고 건네는 한두 마디 말이 오히려 쓰리고 아픈 상처를 덧내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과열된 입시제도가 긴 세월 끄떡없이 위세를 떨치는 현실이 늘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나기까지 거쳐야할 다양한 단계와 과정이 있고, 각 과정과 단계마다 결코 건너뛰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고민과 숙제가 있을 터인데도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한 성장기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 절실한 번민과 고민들이 모조리 입시라는 비좁은 대롱 속으로 한없이 수렴되는 사이, 저 자신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허우대만 멀쩡하고 마음은 속빈 강정 같은 아이어른이 되고마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쓰리고 아립니다. 학벌과 인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조기유학이다 뭐다 하여 일찌감치 조국을 떠나는 이들을 함부로 나무랄 수만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입시학원마다 건물 벽에 큼지막한 현수막으로 1년 간의 실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홍보전쟁을 시작합니다. 수도권의 소위 일류대학합격생들의 이름은 글씨 크기도 크게 색깔도 눈에 확 띄게 적은 다음 그 다음 등급으로 분류되는 대학의 합격생 명단은 차차로 글자가 작아지다가 지방대학 합격생 명단에 이르면 아예 눈 나쁜 사람은 읽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립니다. 학원들은 그렇다 치고, 공교육 기관인 학교 앞에조차 버젓이 그런 현수막을 내거는 이유를 머리가 나빠 그런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현수막이 걸린 학교 앞을 지나칠 때마다 저는 늘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을 생각합니다. 그 분들 머릿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성직(聖職)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들의 생각이 그처럼 천박한데 그 속에서 그래도 일류학교라는 데를 들어가는 아이들이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참 용하다 싶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혹시 교회당 앞에까지 그처럼 으지짠한 현수막이 함부로 내걸리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부라는 것,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잘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가운데 오직 한 가지일 뿐입니다. 공부만 잘하고 다른 것은 아예 못하는 아이들이 있고, 공부 빼놓고는 다른 것들을 썩 잘 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머리만 좋고 인간성 지저분하여 대형사고를 내는 사람들 때문에 지긋지긋하게 몸살을 앓는 사회에서 평생 속 아프게 살고도 끝내 정신을 못 차린다면 세월을 헛살아도 한참 헛살고 나이를 먹어도 한참 헛 먹은 것입니다. 명절도 다가오고 하니, 비싼 현수막 만드는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일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2006. 1. 19.)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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