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29일 남북나눔운동본부와 함께 못자리용 비닐 3천만 평방미터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육로로 개성을 방문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임진각을 거쳐 남측출입국관리소에서 출경수속을 마치고 우리 차를 직접 몰아 비무장지대를 지나 오전 9시쯤 개성에 도착했습니다. 서너 시간동안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찬바람을 맞으며 개성 봉동역 홈에서 못자리용 비닐 1차분 하역작업을 지켜본 다음 북한측 민경련 임원들의 안내를 받아 자남산여관 민족식당에서 회담을 겸하여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남북관계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느 나라 출입국절차 못지 않게 복잡한 수속을 밟아야 하고, 또한 육로로 통행하는 만큼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반드시 거쳐서 오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는 남북한 군 당국자들 사이에 합의에 따라 들고나는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에 할 일이 끝났다고 마음대로 들고 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남쪽으로 내려오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약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포은선생의 충혼이 깃든 선죽교도 둘러보고 선죽교 맞은 편 표충사를 구경한 다음 북측의 아주 특별한 호의로 고려사박물관까지 둘러볼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아무튼 개성시내를 북으로 가로질러 주행하는 동안 아주 가까이에서 북녘동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게된 것도 모처럼의 큰 소득이었습니다. 고려사박물관은 고려시대 성균관자리를 개조하여 관광상품의 하나로 만들어놓은 곳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국자감이 설치되었던 곳이라는 옛 성균관 터에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한옥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아주 널찍한 뜰에는 어림잡아 수백 년은 더 묵어 보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곳곳에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꽃무늬 유똥치마저고리 차림인 여성안내원의 자상한 안내를 받으며 고려시대의 문물을 영역별로 소개하고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내부를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관람 도중 어느 방에선가 고려시대 노비를 팔고 사는 값을 적어놓은 도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도표의 맨 오른쪽에는 소 한 마리 값이 비단 400필로 적혀 있었고, 그 옆에 노비들의 몸값이 비교하기 좋게 막대그래프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15-50세의 여자 종은 120필, 15-50세의 남자 종은 100필, 15세 이하와 50세 이상의 여자 종은 60필, 15세 이하와 50세 이상의 남자 종은 50필...... 종이 자식을 낳으면 역시 종이 되기 때문에 남녀 불문하고 15-50세 사이의 종들이 생산성이 높다하여 비교적 높은 몸값을 지닌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몸짱’이다 ‘얼짱’이다 하여 얼굴과 몸매가 그대로 돈이 되는 요즘, 곳곳에서 “아무개는 몸값이 얼마”라는 소리가 들리는 우리 사회, 사람을 한사코 돈으로만 환산하려 드는 우리네 현실이 생각나 노비 몸값 도표 앞에서 한참동안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몸값” “몸값”을 외치며 제 발로 노비의 길에 들어서는 우리 시대의 얄팍함이 너무 너무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2006. 4. 27.)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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